[STOP! 노화] 여성 장수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노인 재활센터에서 콧대높은 85세 할머니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녀의 옷을 정성스럽게 만들던 정정한 백세 할아버지, 친구들을 위해 수시로 피아노 연주를 해주던 백세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충격을 받아 이 길을 걷게 됐습니다."

인체 노화 연구의 산실인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 백세인 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보스턴 의대 토머스 펄(42.사진) 교수는 연구 시작 동기를 이렇게 털어 놓는다.

그가 하버드 의대 노인학 전임의로 근무하던 1990년대 초만 해도 의학계에선 '나이가 들수록 많이 아프다(The sickest is the oldest)'는 논리가 상식으로 통했다. 따라서 그가 본 건강한 백세인의 모습은 의학상식을 뒤엎는 현실이었다.

펄 교수는 건강한 백세인들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 곧바로 보스턴 주변의 8개 마을에 사는 백세인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초기 연구를 통해 백세인 중 90% 이상은 92세가 될 때까지 병없이 살며 95세 때까지 건강한 상태로 스스로를 챙기면서 지내는 경우도 75%나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초장수인들은 노화가 늦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규명한 것이다.

그는 "원래 노화란 그 자체가 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아니고 질병에 취약해지는 과정"이라며 "노화의 신비를 밝히는 일은 질병에 강해지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10여년간의 연구 끝에 그는 백세인의 4번 염색체에 독특한 장수 유전자가 있음을 발견(본지 1월 16일자 14면)했고, 백세인 및 백세인 가족의 특징을 규명했으며 백세인을 그룹별로 분류해냈다.

그가 지금 관심을 갖는 연구 중 하나는 여성의 강인한 생명력이다. 남자 백세인은 세 명 중 한 명이 '질병 회피형'이며 42%는 '질병 지연형', 나머지 24%가 '질병 후 생존형'이다.

그러나 여자 백세인의 경우 질병 회피형은 13%에 불과하고 43%가 20년 이상 질병을 앓고도 생존한 사람들이다.

이에 대해 펄 교수는 "남성은 병을 앓으면 신체 기능이 곧 떨어져 사망하기 쉬운 반면 여성은 병을 가지고도 기능을 유지한 채 오래 살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그는 "백세인 연구에 박차를 가하려면 '믿을 수 있는' 생년월일 증명서를 가진 전세계 백세인들이 많이 포함돼야 한다"며 "한국의 서울대 노화연구팀과도 함께 백세인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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