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플란트의 역사…고대 이집트부터 올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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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플란트의 역사

임플란트의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자면 우리 생각보다 더 오래입니다. 상실된 치아대신에 뼈속에 어떤 대체 물질을 넣어 회복하려는 노력은 현대에 와서만 있게 된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고고학적인 발견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나 남아메리카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를 돈을 주고 사거나 또는 상아나 나무 등의 재료로 상실된 치아 자리에 이식을 하는 시도들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양이나 개, 원숭이의 치아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시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 개나 원숭이 치아를 사람에게 이식하기도

하버드대학의 피바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도 자연치 위치에 3조각의 조개 껍질을 이식하여 있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A.D. 600년경의 것이라 하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물질로 인간의 상실된 이를 회복하려는 노력은 계속 되었으나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발전은 1952년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였습니다.
브레네막 교수와 그가 개발한 임플란트

스웨덴의 룬트 대학의 정형외과 의사인 브레네막 교수는 뼈의 치유과정을 연구하기 위하여 토끼의 다리뼈에 타이타늄이라는 금속으로 만든 원통을 넣었다가 수개월이 지난뒤 실험이 끝나고 이 금속 원통을 제거하려고 하는데 우연히도 이 원통이 뼈와 뒤엉켜 분리가 되지 않는 현상을 발견하고 좀더 엄격한 조건하에서 타이타늄이 살아 있는 골조직에 매우 높은 예측 가능성을 가지고 구조적으로 결합이 되며 연조직에 염증을 일으키지 않고 이런 현상이 오랜 기간동안 거부 반응 없이 지속된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을 그는 “골융합”이라 명명하고 이후에 브레네막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물리, 화학, 생역학,생리학등의 다른 전문가들 그리고 관련 연구소와 함께 많은 실험과 시행 착오를 거듭하였습니다.

브레네막 교수는 임상 실험을 계속하며 수년간 과학자들 사이에서의 회의적인 시각과 싸워야 했죠. 1965년에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비슷한 형태의 임플란트로 첫 시술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 1965년에 현대적 임플란트 시술에 성공

1968년에서 1971년에 걸쳐 더 집중된 개발을 하였고 1971년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1981년에는 장기간의 연구, 임상자료들을 학계에 보고 할 수 있었고 1982년에 카나다의 토론토에서 있은 치과 임상 학회에서는 성공적인 임플란트 시술에 대한 조건들이 정리 되어 발표되기에 이르러 바야흐로 공적으로 북아메리카에서 치과 임플란트의 사용을 받아들이고 적극 추천하는 결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1986년 스웨덴의 괘테베르그 대학에는 브레네막 교수를 중심으로한 임플란트 치료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후 수많은 임프란트들이 명멸을 거듭하며 발전 해왔고 지금도 수많은 임플란트들이 개발되고 발전 되고 있습니다.

FDA(미국 식품 의약품국)에서는 치과용 임플란트를 시장에 판매하기전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 범주로 규정하고 있으며 여기에 승인을 받으려면 여러 연구 자료들이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 임플란트의 춘추 전국 시대 예고

우리 나라만 해도 불과 수년전에 국산 임플란트가 처음 나오는가 싶더니 이제는 벌써 여러 회사제품이 경쟁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가히 임플란트의 춘추 전국 시대라 할까요. 우리나라에 처음 임플란트가 소개 되었을 때만 해도 사람들 사이에서의 인식은 그게 과연 과연 뼈에 붙어 있을까? 일단 붙는다 해도 얼마나 오래 있을까? 등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가 많았으나 이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시대에 뒤쳐진 사람으로 남게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기능만 다하면 되는 임플란트의 시대에서 심미적인 요구까지도 채워 주는 임플란트의 시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임플란트의 역사만 보더라도 어느 한사람의 노력이나 능력으로 우리가 현재의 혜택을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노력과 시행 착오의 결과로 누리게 되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항상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노력 해 나갈 때 더 나은 발전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 지리라 생각이 드는군요.

브레네막이라는 분이 운이 좋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무언가 발견 했을 때 대충 대충 넘어가고 금방 돈이나 벌어 보려고 덤벼드는 것이 아니라 첫 발견후 이삼십여년의 세월 동안 연구하고 준비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상품화 시키고 임상화 시킨 학자적 양심과 사람중심의 진료철학이 오늘날의 혁명적인 임플란트 발전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자그마하다면 자그마다한 임플란트의 역사를 돌아보며 임플란트 치료에 대한 확신과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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