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달러에 ‘백신’ 있다?…시티 “내년에 달러 20% 하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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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달러화 가치가 2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KEB 하나은행에서 은행 관계자가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미국 달러화 가치가 2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KEB 하나은행에서 은행 관계자가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등장에 떨고 있는 건 바이러스만이 아니다. 미국 달러화도 백신 등장 소식에 맥을 못 추고 있다.

감염병 확산세가 잦아들고 경제 활동이 제 궤도에 오를 것이란 기대 속 위험 자산으로의 자금 이동이 본격화하면 이미 낮은 수준에 머무는 달러 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달러화 가치는 2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내려갔다. 6개국 주요국 통화에 대한 달러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1973=100)는 27일 91.901대에 머무르고 있다. 2018년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달러 가치는 지난 3월 고점과 비교하면 10% 이상 떨어졌다.

미 달러의 자유 낙하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하락은 기본 전제다. “시장의 관심사는 얼마나 빨리, 얼마나 큰 폭으로 주저앉느냐”라고 WSJ이 지적했다.

시티그룹은 내년에 달러 가치가 20%가량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시티의 전망치가 가장 비관적이지만 주요 투자은행도 달러 약세론에 가세했다.

골드만삭스는 내년에 달러 가치가 6%가량 내려갈 것으로 내다봤다. ING의 전망치는 올해보다 10% 하락을 예상한다. 달러 가치가 20% 이상 추락했던 2002년의 데자뷔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모더나는 코로나19 백신 3상에서 90% 이상의 효능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모더나는 코로나19 백신 3상에서 90% 이상의 효능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WSJ은 “백신 개발과 접종 등으로 세계 경제가 정상 궤도로 돌아가면 상대적으로 안전한 미국 자산으로 몰려들었던 자금이 미국 밖의 주식과 채권, 통화 등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처럼 신흥국 등의 위험 자산 구매에 나서는 흐름이 빨라지게 되고, 이를 위해 달러를 내다 팔면서 달러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살만 마흐메드 피델리티 글로벌매크로 본부장은 WSJ과의 인터뷰에서 “달러 유동성이 지나치게 넘쳐난다”며 “상황이 좋아지고 리플레이션이 돌아오면 시중에 넘치는 돈은 더 위험한 자산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돈은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한 긍정적인 뉴스가 나오면서 올 초 신흥국을 빠져나왔던 자금이 다시 유턴하는 모양새다.

지난주에만 신흥국 주식ㆍ채권 투자 펀드에 유입된 자금이 108억 달러(약 12조원)에 이른다. 자금이 몰려들며 일본과 대만 증시는 연일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 코스피도 2600선을 돌파하며 고공행진 중이다.

국제금융협회(IIF)는 27일 보고서에서 “올 4분기에는 (신흥국으로) 2013년 1분기 이후 최대 자금 순유입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을 제외한 신흥국 순유입도 2014년 2분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달러 약세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백신 개발 등으로 시장에 낙관이 퍼지고 있지만 현재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코로나19의 재확산세가 거센 탓이다.

각국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봉쇄조치에 돌입하며 경제 회복에 차질이 빚어지면 안전자산인 달러의 장점이 다시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백신이 실제 접종까지 이어지는 데 시간이 걸리고, 백신 접종을 꺼릴 수도 있는 만큼 여전히 코로나19에 따른 충격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프란체스카 포르나사리 인사이트 인베스트먼트 헤드는 “미국 달러가 약세일 수 있지만 통화가치는 출렁일 수 있다”며 “달러는 여러 나라에서 경제 성장 전망치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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