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옆으로 재워도 두상 안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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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모들은 아기의 고개를 옆으로 눕혀 재운다. 그렇게 해야 뒤통수가 예쁘게 튀어나오고, 얼굴은 조붓해진다고 생각해서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재우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자랐다. 그렇다면 과연 청소년들의 얼굴 형태가 부모들의 희망대로 바뀌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한국인의 머리는 평균적으로 좌우 폭이나 앞뒤 길이 모두 커지고 있지만, 폭이 커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

가톨릭대 한승호(의대 해부학교실)교수는 1940년대에서 90년대 말까지 한국인의 '머리너비 지수'를 조사한 결과들을 비교했다. 머리너비 지수란 앞뒤 길이를 좌우 폭으로 나눈 백분율. 이것이 클수록 머리가 좌우로 넓고 앞뒤는 상대적으로 짧다.

그런데 우리 18세 남성의 머리너비 지수는 40년대 83, 50년대 84에서 90년대 말에는 88로 점점 커졌다. 전체적으로 볼 때 부모들의 희망과는 달리 얼굴이 넓적하고,뒤통수는 납작한 느낌을 주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한교수는 "아기 때 옆으로 재우는 정도로는 머리 형태를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사람의 머리는 이마뼈.마루뼈 등 여러개가 맞물려 구성된다. 아기를 옆으로 눕혀 재우면 눌리는 힘 때문에 각각의 뼈 성장 속도가 달라져 일시적으로는 머리 형태가 바뀐다.

그러나 좀더 커서 옆으로 누워 자지 않게 되면 각각의 뼈는 유전 정보가 지시하는 대로 자라게 되고, 결국 조상들의 머리 형태를 닮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 머리 뼈 모양을 바꾸려면, 뼈가 자라는 것이 멈추고 뼈의 형태가 완전히 굳어지는 중년에 이를 때까지 계속 압력을 가해야 한다.

옛 잉카인들은 실제 이런 식으로 두개골의 모양을 변화시켰다. 그들은 신의 머리가 뒤쪽이 뾰족하게 솟아오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고깔을 약간 뒤로 기울여 쓴 듯한 형상이다.

잉카의 지배층은 신과의 연관성을 내세우고자 머리뼈를 신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평생 나무 틀을 쓰고 지냈다. 그 때문에 머리뼈가 변해 남미 페루에서는 머리 뒤쪽이 뾰족하게 솟아 오른 두개골들이 발견된다.

얼굴이 넓어지고,앞뒤 길이는 상대적으로 좁아지는 현상은 우리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의 이유로 식생활의 변화를 들기도 한다. 무른 음식을 계속 먹으면,씹는 근육이 발달할 필요가 줄어들고,이에 따라 턱뼈의 길이가 줄어드는 등 얼굴 형태에 변화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식생활도 얼굴이 넓어지는 변화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한.일 등 아시안인과는 달리 서구인들은 반대로 머리 앞뒤가 점점 길어지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인종마다 변화의 방향이 다르다는 점도 무엇이 변화를 몰고가는 지 알아내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한국인의 머리형은 전통을 강화(?)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지만, 얼굴을 보는 눈은 서구를 좇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 아기를 옆으로 눕혀 재우는 것 자체가 얼굴 폭은 좁고 앞뒤가 긴 서구형의 얼굴로 가꾸기 위함이다.

옆 얼굴도 서양적인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나타난다.전남대 치과대 교정학교실 연구팀은 턱뼈 교정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의사들을 상대로 옆 얼굴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했다.

옆에서 봤을 때 위 아래 입술의 튀어나온 정도가 똑같은 얼굴(한국형)과, 아래턱이 들어가 상대적으로 윗입술이 나온 것 같은 얼굴(서구형)을 보여줬더니 서구형을 선호하는 것이 두드러졌다.

우리가 선호하는 머리.얼굴형을 만들려면 평생 나무틀을 쓰거나 성형 수술이 아니고서는 앞으로도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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