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수준 높지만 관련법 정비는 미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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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의학기술은 필연적으로 법률과 충돌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구제 등 윤리적으로 옳은 일이라도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해야하지요. 이 점에서 의학과 법학의 학문적 교류는 긴요합니다."

최근 강연차 내한한 세계의료법학회 암논 카르미 회장(사진)은 의학과 법학의 조화를 강조했다.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 교수이기도 한 그는 유네스코 생명의료위원회 의장과 세계법관교육기구 총재 직을 맡고 있는 이 분야의 거장이다.

1965년 창립된 세계의료법학회는 의사와 법률가가 모여 만든 국제학술단체로 현재 85개국에서 1천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올해 8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총회에서 연세대의대 손명세 교수가 집행이사로 선임됐으며 2005년 총회의 한국 개최가 결정되는 등 국내 학계의 참여도 활발하다.

"인공호흡기를 언제 떼는 것이 타당한지,담배소송은 어떻게 전개되어야하는지, 배아(胚芽)복제는 어디까지 허용해야할지 등이 해결해야할 현안들입니다. 한국의 의료기술도 상당한 수준이라 법적, 윤리적 충돌이 예상되므로 국제적 틀 안에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노력들이 선행되어야할 것입니다."

그는 아직도 의료분쟁조정법이나 생명윤리기본법이 제정되지 않고 있는, 낙후된 한국의 현실을 지적했다.

1998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간 배아 복제 실험에 성공했다는 국내 모 병원의 발표가 아무런 제제나 여과 없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 고삐 풀린 한국 생명과학의 대표적 사례다.

배아 복제나 줄기세포 등 첨단의학 기술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리려면 이에 대한 법률가들의 학문적 이해가 선행되어야한다고 그는 말한다.개체 복제와 배아 복제의 차이도 모르면서 무조건 복제하면 신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으로 예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선 의학과 법학 사이 학제간 연구가 필요하며 의사와 법률가 사이의 전문가 교류가 선행되어야한다고 역설했다.

의사는 법률가를 고리타분하게 문구에나 얽매이는 시대착오적 보수주의자로, 법률가는 의사를 사회라는 큰 틀을 보지 못하고 과학이란 좁은 세계에 갇혀지내는 우물안 개구리로 폄하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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