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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풍경] '다담선'

중앙일보

입력

현란한 자태를 뽐내던 단풍잎들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진다. 자동차가 달리면 길가의 낙엽들은 갈피를 잃고 이리저리 나뒹군다. 겨울로 들어가는 이맘때쯤의 거리 풍경은 스산하기만 하다. 따뜻한 차 한잔이 있는 공간이 그리울 때다.

서울 종로구 화동에 있는 '다담선(茶湛禪.02-725-0922)'은 풍경소리가 들릴 듯한 정갈한 한옥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기자기하게 전시된 다기(茶器)들이 먼저 반긴다. 몇 걸음 더 옮기면 분재 소나무가 있는 작은 정원을 만난다.

댓돌을 딛고 다실에 오르면 격자무늬 창살과 병풍 사이에 백자 잔이 놓여 있다. 실내에 가득한 차 향기가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듯하다. 그 옆의 곱돌 화로 위에선 찻물이 하얀 김을 내며 끓고 있다.

하나 하나가 정제된 공간이요 절제된 분위기다. 자연스레 목소리가 작아진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눈인사가 고작이다. 그래도 답답하지 않다.

오히려 스산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차분해진다. 차 한잔을 받아들면 초겨울 찬 기운은 온데간데 없고, 봄 향기를 품은 찻잔 속의 온기(溫氣)로 빨려들어간다.

다담선은 '차를 통해 선(禪)의 싹이 나온다'는 명패의 의미처럼 묘한 매력을 지닌 곳이다. 일반 찻집에서 만나기 힘든 국내의 명차와 중국의 진귀한 차들만 취급한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화계 지방의 야생차를 손으로 덖은 우전차(雨前茶)와 중국의 황실이나 귀족들이 즐겨 마시던 발효차인 30년 된 광운공병원차(廣雲貢餠圓茶)도 맛볼 수 있다.

차를 주문하면 손수 차를 우려내 먹도록 차와 다기를 함께 내준다. 덖음차냐 발효차냐에 따라, 색깔과 향이 어떠하냐에 따라 각기 다른 다기가 나온다.

회원제로 운영하던 곳인데 얼마 전부터 차 문화를 보급한다는 취지에서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차 값(8천~1만5천원)은 상당히 비싸지만 허름한 찻집에서 마시는 두세잔 값을 모아 한번쯤 격조높은 차 문화를 즐겨볼 만하다. 차를 마시는 공간에도 명품이 있다면 이런 곳이 꼽힐 것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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