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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 신고식이었다"...아프간 민간인 39명 살해한 특수부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오스트레일리아국방군 감찰실(IGADF)이 19일(현지시간) 공개한 호주군 특수부대의 전쟁범죄 보고서. 로이터통신=연합뉴스

오스트레일리아국방군 감찰실(IGADF)이 19일(현지시간) 공개한 호주군 특수부대의 전쟁범죄 보고서. 로이터통신=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됐던 호주 특수부대가 민간인 39명을 살해하고 이를 은폐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오스트레일리아국방군 감찰실(IGADF) 폴 브레르턴 소장은 19일(현지시간) 호주 특수부대(SASR) 등이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39명을 불법 살해했으며, 이를 고의로 은폐했다고 밝혔다.

IGADF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망자 대부분은 수감자들로 이들은 모두 전투원이 아니었다. 살해 행위는 모두 비전투 상황에서 이뤄졌다. 비무장 민간인을 비전투상황에서 살해하는 일은 국제법상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앵거스 캠벨 호주 국방부 참모총장이 19일 IGADF 조사 결과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PA=연합뉴스

앵거스 캠벨 호주 국방부 참모총장이 19일 IGADF 조사 결과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PA=연합뉴스

피의자는 총 25명으로, 이 중 일부는 아직도 현역으로 근무 중이었다. 몇몇 신참 병사들은 ‘신고식’의 일환으로 수감자들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기도 했다. 보고서는 “순찰대장(patrol commander)이 한 사람을 붙잡아 두고, 하급자가 이 사람을 살해하도록 지시를 받았다”며 “무기나 휴대전화 등 위조 증거들을 시신에 심어 보고에 쓸 변명을 만들고 조사를 막았다”고 설명했다. 가디언은 보통 하사~병장 계급이 순찰대장을 맡는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이 사건을 두고 군기 문란이나 리더십의 부재에 책임을 묻는다면 쉽겠지만, 그건 (사건 원인에 대한) 중대한 왜곡”이라고 했다. 보고서는 순찰대장들이 부대에서 ‘반신’이나 ‘영웅’ 대접을 받았으며 이들의 지시를 거부하기는 힘든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SASR의 좁은 인력 풀과 ‘전사 문화(warrior culture)’, 각 부대에서 일어난 일들을 타 부대에 알리지 않는 문화도 문제로 지적됐다. 또 IGADF는 별도 보고서에서 군 고위 간부들이 SASR 부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탈 행위를 조직적으로 묵인해왔다고 비판했다.

호주군. AP통신=연합뉴스

호주군. AP통신=연합뉴스

브레르턴 소장은 4년 전부터 호주 특수부대원이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수십 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는 의혹을 조사해왔다. 브레르턴 소장이 지휘하는 IGADF는 2만개의 서류와 2만 5000개의 사진을 확보했으며, 목격자 423명을 인터뷰했다.

브레르턴 소장은 “우리는 전쟁범죄에 대한 루머가 아무 근거가 없다고 보고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조사를 시작했다. 우리 중 누구도 이 같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지는 않았다”며 씁쓸해했다.

앵거스 캠벨 호주 국방부 참모총장은 이에 대해 “부끄럽고 아주 충격적인 일”이라며 보고서가 권고한 안을 모두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보고서는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즉시 배상하고, 관련자들의 유공을 모두 취소할 것 등을 권고했다.

캠벨 총장은 이날 캔버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호주군을 대표해, 우리 군인들의 잘못에 대해 아프간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전적인 사과를 드린다”며 “그리고 호주 시민들에게, 호주군의 일원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캠벨 총장은 ‘(특수부대원 대부분은) 이런 불법적인 길을 택하지 않았다’라고도 강조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EPA=연합뉴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EPA=연합뉴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도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전쟁 범죄에 대해 사과했다. 가니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모리슨 총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일부 호주 군부대에 의해 이뤄진 위법 행위에 대해 깊은 슬픔을 표했으며, 수사를 진행하고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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