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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셋집 10억, 청년 어선임대 38억···상임위 인심쓴 이색예산

중앙일보

입력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가 지난 16일부터 들여다보고 있는 2021년도 예산안 심사자료에는 각 상임위원회 예비심사에서 증액 또는 감액돼 넘어왔거나, 예결위원을 통해 별도로 증·감액 의견이 제시된 사업들이 망라돼 있다. 중앙일보가 18일 이 심사자료를 입수해 뜯어보니 향후 소위 심사 결과가 주목되는 다소 이색적인 증액 사업과 감액 사유도 포함돼 있었다.

외교통일위원회는 통일부 장관의 관사 임차를 위한 예산 10억원을 증액해 예결위로 보냈다. 예결위 소속 김원이·서동용·양기대·이용선·최종윤 의원도 각각 10억원의 증액 의견을 냈다. 증액 사유는 ‘국가비상사태로 인한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소집 시 신속한 대응을 위해서’다. 실제 서울 한남동에 장관 공관을 가진 외교부·국방부와 달리 통일부 장관은 마땅한 관사가 없다. 예결위 안팎에선 “신속한 안보 대응을 위해 필요하다” “4선 의원의 유력 정치인 출신 장관에 대한 과잉 충성 아니냐” “10억 갖고 서울 도심에서 전셋집을 구할 수 있겠느냐” 등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정성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지난 17일 국회 예결위 예산안등조정소위에서 여야 소위 위원들과 함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부 등 정부 부처 예산안을 심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성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지난 17일 국회 예결위 예산안등조정소위에서 여야 소위 위원들과 함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부 등 정부 부처 예산안을 심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노동위원회는 “새로운 야영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계층이 이용 가능한 아영장 도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관련 사업 예산 50억원을 증액해 예결위로 넘겼다. 내장산국립공원에 있는 내장호야영장 정비사업이지만, 실제론 캠핑카 카라반 전용 야영장을 조성하는 일이다. 최근 캠핑족이 증가 추세인 것을 고려하더라도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지 않는 상황에서 새 캠핑장을 만드는 데 국비 50억원을 투입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예결위 안에선 해당 지역구 의원인 윤준병 민주당 의원이 증액 의견을 달았다.

정부안엔 없었지만 상임위 논의 단계에서 추가된 사업들 중엔 일견 신선해 보이면서도 의아한 느낌을 주는 것들도 꽤 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어선 청년 임대' 사업에 38억원을 배정키로 했다. 연안어선 10척을 사들여 청년에게 임대하는 형식으로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내용이다. 농해수위 소속 맹성규·서삼석·이원택·주철현 민주당 의원,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 등이 증액을 요구했다.

농해수위는 ▶전국 초·중·고교 학생 4만명을 대상으로 ‘유기농 기능성 발효건강차’를 시범 공급하는 ‘청소년 발효건강차 음용수 시범공급사업’(10억원) ▶마을회관·노인회관 등 농촌지역 다중집합장소에 국내 최정상급 작가의 문화예술작품을 제작해 보급하는 ‘농업강국을 위한 농촌문화 진흥 프로그램 실시’(5억원)도 증액했다. 모두 정부안에 없었지만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출신인 이개호(민주당) 농해수위원장이 직접 증액을 요구해 반영됐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인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두 번째)과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안 등 조정소위원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인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두 번째)과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안 등 조정소위원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예결위에서 감액 심사가 예고된 사업 중엔 감액 사유가 눈길을 끄는 경우도 있다. 기획재정부는 “국민의 정책 이해도와 정책 수용도를 높이기 위해 온라인 매체 등을 활용해 정책을 홍보하겠다”며 28억5100만원의 정책홍보사업 예산을 책정했지만 기재부 1차관 출신인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재정위기가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기재부가 재정당국으로서 솔선수범하라”며 지난해보다 늘어난 9억5000만원을 전부 감액하라는 의견을 냈다.

외교부가 멕시코·쿠바에 ‘한인 독립운동 청년 원정대’를 선발해 파견하겠다고 편성한 ‘쿠바와의 전략적 협력 확대’ 예산도 제동이 걸렸다. 예결위 소속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청년 원정대를 파견해 쿠바 내 독립운동 사적지를 방문하는 것은 외교부가 수행해야 할 사업과 성격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감액 의견을 붙였다. 산림청 소관 ‘한국판 뉴딜’ 사업 중 ‘미세먼지 차단숲 조성’에 대해선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공업단지보다 미세먼지 차단숲이 조성된 주거지의 미세먼지 농도가 더 높게 측정돼 사업효과가 불확실하고 사업효과성 제고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기존 706억원의 절반을 깎겠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예결위 소위 심사 단계까지 올라왔지만, 증액시도와 감액 의견이 내년 예산에 그대로 관철될지는 알 수 없다. 상임위 예비심사를 거친 예산안을 사실상 예결위 소위에서 크게 뒤바뀌곤 하기 때문이다. 예결위 관계자는 “상임위에서 합의로 올린 예산이라해도 국가 예산으로서 타당성이 의심되면 더 꼼꼼히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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