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불편해도 기다리라”던 전세 대책이 호텔 한칸살이라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정부가 오늘(19일) 발표하는 전·월세 대책에 호텔을 사들인 후 주거용으로 바꿔 공급하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그제(17일) 관훈토론회에 나와 “주거 문제로 고통을 겪는 국민에게 미안하다”며 예고편으로 미리 공개한 내용이다. 야당의 비판처럼 “기가 막히고”(유승민 전 의원), “황당무계”(하태경 국민의힘 의원)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부동산 카페 등엔 “전세 난민 종착지가 방음도 안 되는 호텔 방이냐”거나 “호텔로 안 되면 모텔, 여인숙, 축사, 텐트, 그다음은 다리 밑으로 안내할 거냐”는 식의 체념 섞인 조롱과 분노가 넘친다.

전·월세 대책에 호텔 개조해 공급 포함 #실효성 없는 근시안 대책에 국민 고통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달 초 “임대차 3법 등 급격한 시장구조 변화로 과도기가 길어질 수 있다”면서도 전셋값 급등을 불러온 무리한 정책을 폐기하는 대신 “불편함을 덜 대책을 준비 중이니 기다려 달라”고 주문했다. 꼬여만 가는 전세시장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도 않다가 기껏 내놓은 게 번짓수 잘못 찾은 코미디 같은 호텔 전환 방안이니 민심이 들끓는 것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서울 호텔 50여 개가 휴업 중이고, 이 중 강남의 특급호텔을 비롯해 상당수가 매물로 나와 있는 게 사실이다. 공실로 비워두기보다 용도변경을 통해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미 대학 기숙사 등으로 전환한 곳도 있다. 하지만 이는 당장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관광업계의 호텔 활용 대책이지 결코 정부가 주도하는 근본적인 부동산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서울시가 이미 시도했던 베니키아호텔의 실패가 이를 잘 보여준다. 서울시는 지난 4월 서울주택토지공사(SH)를 통해 도심 호텔을 역세권 청년주택으로 바꿔 입주자를 모집했다. 하지만 원치 않는 호텔 가구 사용료 등으로 실거주 비용이 껑충 뛰는 바람에 당첨된 207가구 중 180여 가구가 계약을 취소했다. 1인 가구용 원룸 정도가 아니라 시장에 공급이 부족한 3~4인 가구가 사는 집으로 리모델링하려면 구조를 완전히 바꿔야 하기 때문에 리모델링 비용은 더 치솟는다. 이미 132조원대의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이를 떠맡는다 해도 한 호텔당 많아야 300가구 정도밖에 공급할 수 없으니 실질적인 공급책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처럼 근본적 해결책과 거리가 먼 데다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향후 전세시장이 안정되거나 관광객이 다시 늘어날 경우 이미 전환한 주택은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부작용이 뻔히 보이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근시안적 대책만 반복하니 “차라리 아무 대책도 내놓지 마라”는 절규가 나오는 것이다. 민간에 맡겨야 할 공급을 틀어쥐고 언제까지 국민을 고통 속에 가둘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