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성형 삽질’ 당장 멈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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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급작스러운 유고 이후 비정상적인 권한대행 체제로 굴러가는 지금의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시민과 전문가들이 기를 쓰고 반대하는 와중에 무리하게 추진하는 졸속 공사를 당장 중단하고 내년 4월 보궐선거 이후에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마땅하다.

시민·전문가 반대에도 800억 공사 무리수 #내년 선거 후 새 시장이 원점에서 검토하길

서울시는 지난 16일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내년 2월까지 1단계로 광장 동쪽의 미국대사관 앞 도로를 7~9개 차로로 확장하고, 하반기에 광장 서쪽 세종문화회관 앞을 보행광장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 발표 당일 시민들은 서울시가 시민 공론화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한다고 비판하며 반대 시위를 벌였다. 시민단체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도시연대·도시문화연구소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단체들이 제기한 의견들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공사를 당장 중단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첫째, 시민과 전문가들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역사성을 살리는 것도 아니고 차로를 축소하고 나무 몇 그루 더 심는 공사를 무리하게 강행할 이유가 없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에 모였던 시민토론단 268명 중 65%가 찬성했다”는 논리를 펴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둘째,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체제에서 공사를 강행하는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 권한대행이 세금 800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를 맘대로 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오죽했으면 박원순 전 시장조차도 지난 5월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나. 지금도 출퇴근 시간에 차량 정체가 심한데 3~5개 차로를 축소하면 교통체증이 심각해질 것이다. 연말에 공사를 강행하면 시민들이 엄청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문제도 생긴다.

도대체 왜 지금 시점에 무리하게 공사하려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시민이 많다. 뒤에서 시장 권한대행을 조종하는 세력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건축계 막후 실세의 입김이 작용한 것인지, 일부 토건 세력의 이권 사업으로 변질된 건 아닌지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광화문광장은 대한민국의 얼굴 같은 상징성이 있다.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앞뒤에 배치된 현재의 광장은 이미 시민들에게 많이 친숙해졌다. 그런데 서쪽에 광장을 만드는 서울시의 ‘편측 안’대로 하면 두 동상이 한쪽으로 밀려나 광장의 균형미와 중심축이 훼손될 수 있다.

서울시는 무리한 ‘성형 삽질’을 당장 멈춰야 한다. 내년 4월 시민의 선택을 받은 새 서울시장이 충분한 논의와 1000만 시민의 공감을 얻은 뒤에 추진해도 늦지 않다. 끝내 공사를 강행할 경우 감사원이라도 나서 제동을 걸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