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프리즘] 독감예방접종 값 차등화를

중앙일보

입력

독감 예방주사가 말썽을 빚고 있다.해마다 되풀이 되어온 연례행사지만 올해도 예방백신의 품귀로 접종에 많은 차질을 빚고 있다.

급기야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싸게 접종하는 경우도 생겼다. 백신의 유효기간을 변조해 보건소에 공급한 도매회사가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는 넘치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크게 두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공급자 측면이다. 독감 백신은 다른 의약품과 달리 미리 대량 생산했다가 보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해마다 3월이 되면 다음해 유행할 바이러스의 종류를 세계보건기구에서 예측한 뒤 부랴부랴 불과 수개월 만에 원액을 만들어 나라마다 정해진 할당량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둘째, 수요자 측면이다. 독감백신이 꼭 필요한 사람은 65세 이상 노인과 심장병.콩팥질환 등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다. 어린이는 필수 접종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국내에서 지난해에만 8백만여명이 접종했다. 대부분 가(假)수요란 이야기다.

그렇다고 이들만 나무랄 수는 없다. 의학적으로 독감 백신은 수천원인 비용을 뽑고도 남을 만큼 건강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도 독감 백신을 맞게 되면 독감에 잘 안 걸리고 걸리더라도 가볍게 앓고 지나간다. 일부 연구에선 일반 감기에도 증상 완화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독감은 결코 지독한 감기쯤으로 경시할 대상이 아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올해 미국에서만 3천5백만~5천만명이 독감에 걸려 이중 10만명이 입원하며 2만명이 폐렴 등으로 숨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은 전세계적으로 2천만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우리나라는 인구밀도가 높아 독감이 유행하면 더욱 피해가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백신 공급량을 대폭 늘려야 한다. 원액 수입량을 확대하고 국내 제조회사에서 완제품을 만드는 시설도 확충해야 한다.

둘째, 우선 꼭 필요한 사람부터 가려서 접종해야겠다. 독감 백신은 드물지만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겐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지금처럼 대상자를 가리지 않고 줄만 서면 획일적으로 주사를 해주는 방식은 곤란하다.

접종 전 의사의 진찰이 필요하며 덜 시급한 건강한 성인에겐 접종 비용을 상향 조정해 수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