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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환기 방역’으로 겨울철 밀폐건물 코로나 확산 막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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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홍희기 경희대 기계공학과 교수 대한설비공학회 전 회장

홍희기 경희대 기계공학과 교수 대한설비공학회 전 회장

환기 문제에 관해 대한민국은 아직 후진국이다. 우리의 경험을 돌아보면 여러모로 어렵던 시절에는 난방이 최우선이었다. 경제가 급성장하고 살 만해지면서 환기는 건너뛰고 에어컨 냉방이 필수화되는 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 등 전통적인 선진국은 난방만큼 중요시하는 것이 환기다.

강제환기로 공기감염 차단 가능 #환기 의무화 대상 건물 확대 필요

국토교통부가 다중 이용시설에 대해 권고하는 1인당 환기량은 약 30㎥/시간이다. 하지만 일정 면적(예를 들어 학원은 1000㎡) 이하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출입하는 대부분 시설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에 짓는 건물은 고밀폐 구조다. 따라서 건물 입주자(재실자)의 건강을 위해서는 적절하게 산소를 공급해야 하며 강제환기가 필수다. 그런데 이 필수적이어야 할 환기가 코로나19 예방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뒤늦게 공기감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건물 환기가 매우 효과적임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공기감염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실내 바이러스 농도를 낮추고, 재실 시간을 짧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마스크를 철저히 착용함으로써 감염자의 비말 분출량을 줄이고, 재실자의 바이러스 입자 흡입량을 줄이는 것이 효과적이다. 카페·음식점처럼 식음료 섭취 중에 마스크 착용이 어려운 공간에서는 환기를 통해 감염 환경 자체를 개선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이에 비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의 환기 대책은 너무나 부족하고 미약하다. 에어컨을 틀었을 때는 2시간에 한 번 환기, 밀폐된 공간은 매일 두 번 이상 환기가 전부다. 지금보다 환기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환기량의 단위는 ‘m3/시간’과 ‘회/시간’이 사용된다. 여기서 회는 공기 교체 횟수를 뜻한다. 1회/시간은 1시간 동안 실내공기를 한번 다 배출하고 새 공기를 들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2시간에 한 번 환기하라고 하면 이런 의미로 생각할까. 국토부 기준대로라면 다중이용시설의 경우 2시간에 한 번 환기가 아니고, 그 몇 배의 연속적인 환기가 필요하다.

문제는 비용이다. 여름철은 그나마 창문을 열어도 에너지 비용의 증가가 상대적으로 작다. 문제는 난방비 폭탄이 기다리는 늦가을부터다.

그래도 해법은 있다. 난방비 저감과 환기량 확보를 위해 신축 아파트에 의무화된 전열교환기인 ‘열 회수형 환기 장치’를 다중이용시설이나 학교·종교시설 등에 서둘러 도입하는 것이다. 설치가 면제됐던 좁은 면적에도 예외 없이 일정 수준의 최소 환기량이 필요하다. 환기 기능만 있는 창문형이나 벽 부착형, 스탠드형은 저렴하게 설치가 가능하다.

방역 당국은 3밀(밀폐·밀접·밀집) 환경이 코로나19 확산의 온상이라며 “환기가 안 되는 곳은 가급적 방문하지 말라”고 계속 촉구한다. 옳은 말이지만, 대부분의 실내 공간이 환기가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집이나 직장에만 머물란 말인가.

지금처럼 부실한 환기 여건을 방치하면 조만간 다시 거리두기 1.5단계, 2단계로 악화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본격적인 겨울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환기장치를 설치한 업소에는 거리두기 2단계에도 제한적으로 영업을 허용해주자. 영세업자에게는 환기 장치 설치보조금 지급도 검토해보자. 이미 일부 지자체에서 시작했다.

정작 필요한 곳은 인구 절반이 몰려 있는 수도권과 광역시다. “밀폐된 공간은 가급적 자주 환기하자”는 공허한 구호는 접고, 환기 설비를 필수화해야 한다.

외국에서 코로나 백신이 나왔다지만 팬데믹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매장은 소독은 물론 환기 방역을 제대로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안내문을 내 건 업소에서 안심하고 담소를 나누면 좋지 않겠나.

홍희기 경희대 기계공학과 교수·대한설비공학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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