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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망명 온 DJ에 편지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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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오른쪽)과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접견하는 모습. [중앙포토]

2001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오른쪽)과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접견하는 모습. [중앙포토]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당신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내 도움이 필요하면 주저 말고 연락해주십시오." - 조 바이든

1983년 9월 30일 당시 미국 상원의원이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망명 중이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9일 바이든 당선인과 김 전 대통령이 주고받은 편지 2점을 공개했다.

1983년 당시 상원의원이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 [사진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1983년 당시 상원의원이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 [사진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82~85년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2차 망명투쟁을 하던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화, 인권문제, 미국의 대외정책 등에 대한 견해를 담은 편지를 미국 내 주요 인사들에게 지속해서 보냈다.

당시 바이든 상원의원이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는 앞서 받았던 서신에 대한 답신 성격으로 보인다. 민주당 상원의원이었던 그는 김 전 대통령의 한국 민주화 활동을 적극 지지하고 협력한 의원 중 한 명이었다.

바이든 당선인은 당시 보낸 편지에서 "당신(김 전 대통령)이 보내준 정보가 유용할 것"이라며 "당신이 다루는 문제들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1984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상원의원이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낸 서신. [사진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1984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상원의원이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낸 서신. [사진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작년 가을, 제가 보내드린 견해에 대해 관심을 표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한국의 발전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대중

김 전 대통령은 이듬해인 84년 2월 27일 '한국인권연구소' 명의로 바이든 당선인에게 2쪽짜리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엔 당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비판과 함께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84년 2월 25일에 있었던 '정치인 202명 해금 조치'에 대해 "핵심 주요 인사들에 대한 해금은 하지 않은 채, 대외적인 선전 목적에서 기만적인 조치를 단행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미국 국무부가 이 조치에 대해 즉각적인 환영성명을 내놓아, 한국의 현실에 절망하는 많은 국민이 미국을 비판하고 있다. (때문에) 일부는 반미주의자가 되고 있다"며 논의가 필요한 '긴급한 현안'이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의 만남 제안에 대해 바이든 당시 상원의원이 답장을 보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바이든 당선인이 편지를 보낸 83년 당시만 해도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친분을 쌓은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든 당선인은 편지의 수신인을 표시하며 김 전 대통령을 '미즈. 김대중 (Ms. Kim Dae Jung)'라고 칭한다. 또 편지는 '존경하는 미즈. 중'(Dear Ms. Jung)으로 시작한다. 미국식 이름 표기 방식을 볼 때 '중'을 패밀리 네임(성)으로 알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도서관 측은 "(편지를 주고받던) 이때부터 두 사람은 친분을 쌓았다"며 "바이든 당선인은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했고, 김 전 대통령 재임 시기엔 '햇볕정책'을 지지했다"고 설명했다.

김대중도서관 관계자는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는 당시 만났던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된 바 있고 바이든이 자서전에서도 '김대중을 존경한다'고 표현했을 정도"라며 "이번 사료는 김 전 대통령과 바이든 당선인의 관계가 시작된 1980년대 초중반 시기 두 사람과 관련된 사료의 최초 공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중앙포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중앙포토]

2001년 김 전 대통령과 바이든 당시 미연방 상원 외교위원장은 청와대에서 재회한다. 오찬자리에서 바이든 당선인이 김 전 대통령에게 "넥타이가 아주 좋다"고 칭찬하자, 김 전 대통령이 "넥타이를 바꿔 매자"고 호응해 두 사람은 즉석 해서 넥타이를 바꿔 매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녹색 넥타이'엔 수프가 묻어있었지만, 바이든 당선인은 이를 받아들고 20여년간 '승리의 상징'으로 간직했다고 전해진다.

김대중도서관 관계자는 "김 전 대통령은 서거했지만, 그와 오랜 기간 긴밀한 인연을 맺었던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며 "향후 대미 외교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이런 사실을 참조하는 것은 한국 국익 실현에 있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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