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공학 등 학문의 벽 허물자] 선진국에선 이렇게 움직인다

중앙일보

입력

지금 인류는 산업사회를 지나 정보 중심의 지식시대로 진입하면서 엄청난 사회적.경제적 변화를 겪고 있다.

지식시대로 가기 위한 창조적 파괴가 때로는 생각보다 느리게 진행되기도 하지만, 변화의 징표들은 정보통신 기술뿐 아니라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조금씩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산업혁명과 정보혁명에 이어 21세기 바이오혁명이 지식시대 변화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바이오혁명은 2000년 6월 인간지놈 지도의 완성과 함께 시작되었다.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지난 2년 동안 유전체학은 아직 이렇다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에게 생명공학 산업이 꾸준히 제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를 찾는 일은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미래학자 M 마자르의 말대로 지식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학문분야, 기술.산업 등에서 서로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현실적으로 과학기술 사이에 기술융합으로 나타나게 된다.서로 다른 기술의 융합으로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를 해결한 예는 바이오 분야의 인간 지놈 서열분석에서 찾을 수 있다.

생명의 유전자 네트워크 규명을 위하여 분자생물학.유전학.화학 등이 연계된 생명공학 기술과 의학.수학.컴퓨터 정보 기술이 융합함으로써 인류 역사상 최대의 성과를 이룩하였다. 여기에 나노기술이 융합한다면 이론적으로 완벽한 기술융합의 예가 될 것이다.

지식시대의 기술융합의 문제는 다(多)학제적 연구의 촉진이나 산업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할 뿐 아니라 기술융합형 인재배출이라는 면에서 제도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창의적인 기술융합을 위해서는 부분에서 전체로 전환할 수 있는 전체론적인 사고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융합되는 두 분야에 모두 익숙한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존 교육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대규모 기술융합 시대를 맞아 사고의 대전환을 할 때가 되었다. 유연성.창의성.수월성, 그리고 실용성까지 갖춘 국가차원의 첨단 연구시스템을 하루 빨리 구축하고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정착시켜야 한다.

선진국의 대학들은 기술융합 시대에 대비하여 이미 대규모 투자를 시작하였다.

세계의 생명공학을 이끌고 있는 스탠퍼드대의 경우 이미 4년 전에 생명공학.생의학.생명과학의 세 분야를 융합시키기 위하여 약 1천7백억원을 들여 '바이오-X' 계획을 시작하였다.

50개의 창의적 연구그룹이 사용할 바이오-X 센터 건물도 2003년 여름 완공 예정으로 신축 중이다. 캘리포니아대는 QB3계획을, 코넬대는 스타계획을, 미시간대는 생명과학 추진 계획을, 도쿄대는 지놈계획 등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늦긴 하였지만 지식시대의 기술 대융합을 위해 먼저 대학 자신이 변해야 한다.

대학에서 교수채용의 경직성, 첨단 연구자들의 전문성에 따른 배타성, 외국인 연구자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도적 폐쇄성들이 창의적 기술융합의 장애요인이다. 대학 스스로 이러한 장애요인들을 극복해야 한다.

정부와 대기업은 지식시대의 연구와 기술융합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대학에 2~3년간 적어도 천억원대의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