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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공사, 흡연 피해 등 23년치 연구기록 내주 첫 공개

중앙일보

입력

폐암 환자와 그 가족들이 한국 담배인삼공사측을 상대로 낸 소송과 관련, 공사측이 20년 넘게 축적해온 연구 결과가 공개된다.

공개 자료에는 한국산 담배의 성분 분석 결과와 건강 유해성 여부 등에 관한 내용이 포함돼 있어 큰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이번 자료 공개로 흡연이 질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규명 문제 때문에 3년 가까이 끌어오던 담배 재판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담배인삼공사는 11일 "재판부(서울지법 민사합의12부)의 정보 공개 결정에 따라 1978년부터 2000년까지 23년 동안의 담배 관련 연구 보고서 3백여건을 오는 23일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매청에서 담배를 제조하기 시작한 이래 정부의 담배 관련 연구 자료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공사측은 "자료에 '담배 연기가 DNA 손상에 미치는 영향''흡연과 건강의 상관관계''간접흡연 실태와 폐암과의 연관성' 등이 들어 있다"고 밝혔다.

1999년 12월 金모(57)씨 등 폐암환자 여섯명과 가족 등 31명은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 되는 인자를 20종이나 함유하고 있어 폐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며 국가와 한국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법원에 냈다.

이에 앞서 그해 9월에는 흡연 피해를 주장하는 金모(사망)씨측이 국가를 상대로 1억원의 손배소를 제기, 현재 두 건의 담배 소송이 진행 중이다.

환자측은 삼성서울병원과 국립암센터 등의 의료진으로부터 흡연과 폐암과의 관련성에 대한 소견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했다.

이에 공사측은 "원고가 치료를 받아오던 병원에서 나온 결과이므로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반박하며 팽팽히 맞서왔다.

특히 서로가 양보없이 대립했던 부분이 공사측의 자체 보고서 공개 여부였다.

환자측은 첫 재판부터 담배의 인체 유해성에 대해 연구한 자료를 공개할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공사측은 "영업상의 비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자료 공개 범위를 놓고 줄다리기를 해왔다.

환자측 소송 대리인 배금자(裵今子)변호사는 "이번 공개 자료가 공사측이 흡연의 유해성을 알면서도 이를 은폐하고 수십년간 돈벌이에만 급급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또 "'애연가의 흡연 행태 조사' 등은 공사가 사실상 담배의 중독성을 높이는 연구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裵변호사측은 "공사측이 재판을 고의로 방해하기 위해 이번 공개 때 자료 복사를 허용하지 않은 채 열람토록 했다"며 "재판부에 증거자료 제출을 요구토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공사측은 "담배사업이 앞으로 민영화되면 후발 경쟁업체와 외국회사 등에 우리 담배 제조의 노하우가 유출될 우려가 있어 자료 공개를 미뤄왔다"며 "자료가 갖는 의미는 재판부가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사례=10여년 전부터 본격적인 담배 소송이 제기됐다. 재판 과정에서 담배회사측의 자료는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94년은 담배 소송에서 역사적인 해였다. 담배회사인 '브라운 앤드 월리엄슨'의 내부보고서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이다.

이를 통해 담배회사가 수년 전부터 흡연의 중독성과 유해성을 알고도 숨겨왔음이 드러났다. 이후 재판부는 담배회사에 전면적인 자료 공개를 요구하는 추세다.

가끔 담배회사측이 자체 자료를 은폐했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99년 7월 미국 플로리다주 법정은 주민 50만명이 대리인을 통해 낸 소송에서 담배회사들이 건강에 해롭다는 증거를 감춰왔고, 담배가 중독성이 있다는 원고측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 판결로 미국 담배회사는 원고들에게 2천억달러(약 2백40조원)를 물어주게 됐다. 현재 미국에서는 1천여 건의 담배 소송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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