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아침을 깨운 신바람 에어로빅 스타 강수진씨

중앙일보

입력

"자-, 갑시다. 힘차게-, 즐겁게-, 신나게-, 이(一)! 얼(二)! 싼(三)! 쓰(四)!"

"(손으로 가리키면서)아주머니! 남편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즐겁자고 하는 거예요. 자-, 탄력있게-, 가슴 펴고-, 뛰고-, 차고-."

지난해 중반까지 꼬박 2년 동안 베이징(北京)의 아침을 깨운 한 한국 여인의 힘찬 목소리다. 오전 6시만 되면 어김없이 베이징TV에 나타나는 한국 여인, 그녀의 신나는 구령 소리는 시민들의 이불자락을 사정없이 잡아젖혔다. 따라하기 겁이 날 정도로 과격한 몸짓, 그래도 조금만 지켜보면 왠지 어깨가 절로 들썩이는 기분, 신바람 그 자체다.

조수진(趙守鎭.28)씨. 그녀는 중국에서 아직 생소했던 '댄싱 에어로빅'이란 새 분야로 하루 아침에 베이징의 아침을 거머쥐었다. 그녀는 이제 중국의 초일류급 에어로빅 강사다. 한 주에 두시간만 강습해도 한 달에 4만위안(약 6백만원)은 너끈하게 번다.

趙씨의 인기가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그 현장을 보자.

지난달 24일 베이징 푸싱먼(復興門)거리의 헬스클럽 칭냐오(靑鳥)의 한 에어로빅 강습장. 바늘 하나 꽂을 데도 없이 수강생들로 빼곡했다. 문 앞에는 '유명 에어로빅 강사 趙선생 초빙 강습회'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강습실 밖에도 구경꾼들이 여럿 기웃거렸다.

"저 사람이 조수진인가봐. 어머, 저 몸짓 좀 봐. 저거 따라 할 수 있겠어?"

"창피할 것 같은데. 그래도 들어가 볼까." 문 밖에서 趙씨의 동작을 훔쳐보던 20대 아가씨 두 명은 결국 문을 열고 들어선다.

"거기 서 계신 분, 다시 따라 해 보세요. 이왕 제 수업 들어왔으니까 신나게 하셔야죠. 춤추는 기분으로-, 소리치는 기분으로-, 이! 얼! 싼! 쓰!"

능수능란한 그녀의 추임새에 얼어 붙었던 수강생들의 몸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힘들지만 신나는 趙씨의 댄싱 에어로빅을 따라하다 보면 학생들의 몸은 어느새 땀으로 흠씬 젖는다.

趙씨는 강습실 안에서만 스타가 아니다. 대중적인 유명인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그녀가 상하이(上海)로 출장 가기 위해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려고 할 때 여권을 잊고 나온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가방을 여기저기 뒤지며 허둥대자 직원이 벌떡 일어서더니 "(에어로빅 동작을 해 보이며)이거 가르치러 가는 거죠"라며 그냥 통과시켜줬다.

사실 그녀는 타고난 '에어로빅 꾼'이다. 중학시절부터 에어로빅에 심취해 고교 졸업 후 곧바로 강사로 나설 정도였다. 그러나 졸업한 지 5개월쯤 된 어느날, 그녀는 곧바로 중국으로 날아갔다. 왜 그랬을까.

"우연히 친구로부터 중국 소식을 들은 게 계기가 됐어요. 아직은 못살지만 급격히 발전하는 중국, 그곳에 가면 에어로빅으로 성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더군요."

그녀는 1994년 외국인 전문대학인 베이징어언학원(北京語言學院)에 등록했다. 그녀는 죽어라고 책만 팠다. 언어를 무기 삼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틈틈이 중국 에어로빅 시장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4년간에 걸친 그녀의 관찰 결과,결론은 '모색 끝, 성공 시작'으로 나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중국은 아직 에어로빅을 '겉옷을 벗어 던지고 하는 맨손 체조'쯤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앙텔레비전(CCTV)이 내보내는 에어로빅도 영 심심했다. 관심있는 사람도 쫓아낼 판이었다.

졸업반이던 98년, 마침내 趙씨의 '무유천하(舞遊天下)'가 시작됐다. 우선 시내 에어로빅 강습소를 차례차례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자신의 실력을 직접 보여준 뒤 강의를 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작은 초라했다.

"제 동작을 본 대부분의 강습소 사장들은 '과격하다'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번번히 퇴짜였어요."

이 정도로 물러설 趙씨가 아니었다. 4년간에 걸친 탐색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녀는 끈질기게 이곳저곳의 문을 두드렸다.

결국 99년 5월 베이징 북쪽 야윈춘(亞運村)내 한 에어로빅 강습소에서 그녀는 첫 직장을 잡았다. 천려(千慮)했는데 일실(一失)할 그녀가 아니다. 보란 듯이 강습생들을 끌어모았다. 주춤거리던 사람들이 친구 손에, 딸 손에, 동생 손에 끌려 그녀의 강습소를 찾았다.

이 때부터 강습소 사장의 집무실은 문 앞으로 고정됐다. 소문을 듣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들을 돌려 보내기 위해서였다.

눈썰미 날카로운 방송국 프로듀서들이 趙씨를 놓칠 리 만무하다. 베이징TV는 그해 8월, 趙씨를 아침 에어로빅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발탁했다. 이 때부터 趙씨는 아침.점심.저녁, 하루에 꼬박 세 차례씩 베이징 시민들 앞에 나타났다.

趙씨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때마침 불어닥친 한류(韓流.중국내 한국바람)도 도움이 됐다. 그녀의 프로그램은 시청률 34위에서 단숨에 3위로 뛰어올랐다.

그녀는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6월, 에어로빅 진행자를 그만둔 뒤에도 방송국의 건강 리포터로 활약하면서 이런저런 건강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중국에서 그녀의 위치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서울에서 중국 '추미(球迷.축구팬)'의 응원단장을 맡아 격렬한 춤동작으로 분위기를 띄웠고, 이 장면은 그대로 중국 전역에 생방송됐다.

"월드컵 이후부터 중국인들은 저를 한 동포처럼 대하더군요. 자기 집으로 초대하는 친구가 엄청 늘어났지요."

중국인들이 그녀에 대해 갖는 인상은 한마디로 '건강과 활력'이다. 5백W짜리 앰프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소리도 그녀가 질러대는 구호소리에 묻혀버릴 정도다.

"뭔가 달라요. 우리는 '펑쾅(□狂.미친) 에어로빅'이라고 불러요. 선생님은 정말 신나는 분이에요. 한국 사람 만나면 모두 우리 선생님 같아 보여서 반가워요."

趙씨 권유로 에어로빅 강사로 나선 왕산산(王□□.19)의 말이다.'건강과 활력'이라는 趙씨의 이미지가 한국 전체의 이미지로 바뀌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조수진 에어로빅 연구소'.

그녀가 중국에 세울 연구소의 이름이다. 이 연구소에서 중국인들과 손잡고 독창적인 에어로빅을 개발하겠다는 게 그녀의 꿈이다. 이 꿈이 이뤄지는 날, 한국과 중국은 분명 한단계 높은 곳에서 다시 만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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