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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공시가격 시세 90%로…집값 내려도 보유세는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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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정부가 15년에 걸쳐 공동주택‧단독주택‧토지 등 부동산 공시가격을 시세의 9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15억원 이상 공동주택(아파트)은 5년 뒤면 시세의 90%까지 공시가격이 높아진다. 공시가격은 부동산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해 증여세와 건강보험료, 개발부담금 등 60개 분야에서 기준 지표로 활용된다. 공시가격의 시세반영률이 높아지면 세금과 각종 보험료 부담이 커지게 된다.

국토교통부가 3일 발표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따르면 아파트는 매년 3%포인트씩 공시가격이 높아진다.

아파트 공시가격이 5~10년 후 시세의 90%까지 오른다. [사진 pxhere]

아파트 공시가격이 5~10년 후 시세의 90%까지 오른다. [사진 pxhere]

현재 현실화율(시세반영률)이 68.1%인 9억원 미만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3년 뒤인 2023년까지 시세의 70%로 높아진 뒤 매년 3%포인트씩 올라 2030년 90%까지 상승한다. 9억~15억원 미만은 현재 69.2%인 시세반영률이 7년 뒤인 2027년까지 90%로 오른다. 15억원 이상의 시세반영률(75.3%)은 5년 뒤인 2025년에 90%가 된다.

시세 52.4%인 단독주택도 90%까지 인상  

공시가격의 시세반영률이 52.4%로 낮은 단독주택의 경우 9억원 미만은 15년, 9억 이상은 7~10년간 연평균 3~4%포인트 오른다. 토지는 8년 만에 시세반영률이 65.5%에서 90%로 높아진다. 주거용·상업용·임야 등 토지 용도와 관계없이 일괄 적용된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국토연구원 주관으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수립’ 공청회를 열고 공시가격을 80%, 90%, 100%까지 높이는 안을 논의했다. 공청회 당시 90% 안이 유력한 방안으로 손꼽혔고 이에 따른 각종 논란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 원안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주요 논란 중 하나는 ‘집값이 내려가도 세금은 더 내야 한다’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가 시뮬레이션(모의계산)한 공시가격과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변화에 따르면 집값이 10% 떨어져도 정부가 목표한 공시가격 시세 반영률 90%가 될 때까지 보유세는 계속 늘어난다. 가격 변동성이 큰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다.

아파트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90%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아파트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90%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예컨대 서울에 있는 6억원 아파트의 매매가격이 매년 1%씩 떨어져 2030년에 5억4811만원이 돼도 재산세는 현재 44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늘어난다. 마찬가지로 서울에 있는 17억원 아파트의 몸값이 5년 뒤 16억원으로 떨어져도 재산세는 324만원에서 751만원으로 증가한다.

국토부는 집값 하락기에 대한 대응을 위해 연도별 제고 상한(6%포인트)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센터 부장은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이고 중장기적인 공시가격 인상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집값 10% 떨어져도 세금은 2배

상대적으로 집값이 싸고 공시가격 시세반영률이 낮은 주택에 대한 완충 장치도 미비하다. 현재 시세반영률이 53.6%에 불과한 단독주택은 연평균 최대 7%까지 공시가격이 뛸 수 있다. 아파트(3%포인트)의 두 배 수준이다. 국토부는 “현실화율이 낮은 단독주택 중에서 시세 9억원 이상의 경우 연간 4~7%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변동 폭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주택 가격에 따른 형평성 논란도 있다. 9억원 이상 아파트는 지난해에만 공시가격이 21.12% 올랐다. 9억원 미만은 1.96% 오르는 데 그쳤다. 때문에 현재 9억원 미만의 시세반영률은 68.1%지만, 9억원 이상 아파트는 72.2%다.

5년 뒤에도 이 격차는 더 커진다. 9억원 미만 아파트의 시세반영률은 75.7%지만, 9억~15억 미만은 84.1%, 15억 이상은 90%로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세금 인상은 가격 안정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가격대별로 차별해서 증세하면 세율이 낮은 아파트가 모여 있는 지역의 시세가 오르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시가격 상승으로 인한 세금 부담이 세입자에게 전가되는 ‘조세 전가’가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임대차 2법(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시행으로 전셋값이 오르고 ‘전세→월세’로 전환이 빨라지는 상황에서 공시가격 시세반영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자칫 전세난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어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재산세와 종부세 등 보유세 부담으로 전세보다는 현금 확보를 할 수 있는 월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질 것”이라며 “특히 일정한 소득이 없는 은퇴자나 고령자의 고민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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