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의료의 맥] 이혜정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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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72년 죽(竹)의 장막이 걷히고,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였지요. 침술로 전신마취를 한 뒤 수술을 하는 장면을 TV로 보고 진로를 의대에서 한의대로 바꿨습니다."

현재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에서 침구경락학을 가르치는 이혜정(48)교수.

그녀는 환자를 돌보는 임상보다 오로지 침구의 근본이 되는 경락(經絡)과 경혈(經穴)에 빠져 30년간 한 우물을 팠다.

87년 한의대에 경혈학 교실을 만든 것도 그녀였고, 99년 회장을 도와 대한경혈학회를 설립하고 교육인적자원부의 '두뇌한국(BK)21'사업에 침구경락학 교육.연구분야로 참여한 것도 이교수가 처음이었다.

경락은 생명의 원천인 기(氣)에너지가 흐르는 인체 내의 길이고, 경혈은 기가 중간중간에 모여있는 물웅덩이와 같은 곳.

이교수는 "동양의학이 눈에 보이는 혈관과 신경을 다루지 않고 굳이 보이지 않는 경혈에 매달린 것은 기와 혈이 혈액과 신경의 흐름을 지배하는 생명의 근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양 침구학의 우월성을 이렇게 표현하는 이교수의 업적과 연구방향은 크게 두가지. 하나는 경락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

이를 위해 그녀는 자기공명영상촬영(MRI)장치를 활용, 다리의 경혈부위를 자극했을 때 뇌의 시각영역에 변화가 오는 것을 증명해 98년 국제 학술지에 게재했다.

이교수가 역점을 두고 연구하고 있는 또다른 분야는 경락과 경혈을 이용한 난치성질환의 치료법 개발.

특히 경혈 자리에 한약 엑기스를 주입하는 약침요법의 과학화는 지속적인 그녀의 관심거리. 80년대부터 쏟아낸 1백여편의 논문이 그의 열정을 반영한다.

지난해만 미국 과학논문 색인(SCI)에 논문 6편을 등재한 이교수는 최근 과학기술부에 기초과학연구센터(SRC)지정 신청을 해놓은 상태. 침구경락연구센터로 지정받을 경우 SRC로서는 한의계 통틀어 처음있는 일이다.

이교수는 "미국은 99년도에 이미 2백90만달러(3백70억원)를 침과 관련된 13개 과제의 연구비로 투입했다"며 "경락.경혈의 과학적 토대가 마련되면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국제경쟁력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창출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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