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과 육아의 '구경꾼'이었던 남편들이 아내의 임신과 출산의 '동반자'로 바뀌면서 산후 우울증까지 함께 겪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출산의 기쁨뿐 아니라 스트레스도 부부가 함께 공유하는 시대가 온 것.
인터넷 초보아빠 모임 게시판에서는 "마냥 좋을 줄만 알았는데, 막상 아기의 얼굴을 보니 어떻게 키워야하나 싶은 생각에 잠이 안온다"거나 "아기가 우는 통에 아예 집에 들어가기 싫다""아기에게만 신경 쓰는 아내를 보면서 소외감을 느낀다"는 고백을 털어놓는 솔직한 아빠들을 만날 수 있다.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아내의 출산 전보다 음주를 더 많이 하게 된다"는 아빠도 있다.
국내엔 아직 정확한 통계치가 없지만, 미국의 한 연구기관이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신생아 아빠의 62%가 산후 우울증의 초기 단계인 베이비 블루스(Baby Blues)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산후우울증은 산모만 겪는다고 생각하지만 아빠들도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생기기도 한다.[모델=독자 최승희씨 부자.사진=신인섭 기자]
이는 베이비 블루스를 겪는 산모 수와 맞먹는 수준(70%)이다. 이 현상을 경험하는 아빠들은 산모와 마찬가지로 신경이 예민해져 작은 일에 짜증을 내고, 갑자기 자신감을 잃고, 또 이유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분당차병원 정신과 서신영 교수는 "산모들은 에스트로겐 같은 여성호르몬의 변화 때문에 산후 우울증을 겪지만 아빠들은 스트레스로 인한 세로토닌(기분을 좌우하는 호르몬)의 변화로 베이비 블루스를 겪는다"면서 "육아의 부담감이 죄의식으로, 또 다시 분노로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빠들이 겪는 베이비 블루스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가장 흔한 것은 역시 경제적인 면에서 비롯된다.부양해야 할 가족이 한명 늘었다는 점과 멀지않은 장래에 들어갈 교육비 등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의 스트레스가 꼭 경제적 문제 때문에 오는 건 아니다. 갑작스런 라이프 스타일 변화도 스트레스의 큰 요인이다.
주말 저녁의 외식이나 영화감상 같은 휴식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오히려 한밤중의 아기 울음소리로 늘 수면부족에 시달리다보니 우울증에 쉽게 빠지는 것이다.
뉴욕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학센터 헨리 해리스 박사는 "베이비 블루스는 대개 두 주면 끝나지만 그 기간 동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생긴 부부갈등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면서 "아빠의 스트레스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빠들 스스로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아내면 더 빨리 베이비 블루스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울증의 원인찾기 이외에 현재의 스트레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베이비 블루스 극복방법의 하나다. 한밤중에 일어나 아기를 돌보는 일 등 출산 직후의 육아 분담을 '부당한 짐'으로 여기는 아빠들도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쁜 아빠'라고 비난받을까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리지 못하는 아빠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빠의 스트레스를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이런 감정을 가족들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아내 임신만 해도 남편들 부담 느껴"
출산은 물론이고 아내의 임신만으로도 남편들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조사가 있다. 아내의 첫번째 임신을 경험하는 남편의 경우가 더욱 그러하다.
지난해 12월 호주 애들레이드의 한 의료센터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편들은 아내의 임신 기간 동안 스트레스를 이기기위한 과식과 음주 때문에 체중이 평균 2㎏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곱 명 가운데 한 명은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위험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음주를 한다는 것.
조사를 주도한 플린더스 의료센터의 캐롤린 코르킨데일 박사는 "남자들은 생활습관의 변화에 대한 준비가 여자보다 부족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우울증에 빠진다"고 분석했다.
또 "배우자의 임신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한 대접을 받는 것도 스트레스의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