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글날도 ‘재인산성’ 공방…“세종대왕 갇혔다” vs “방역의 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글날인 9일 경찰이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을 경찰이 설치한 펜스가 둘러싸고 있다. 연합뉴스

한글날인 9일 경찰이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을 경찰이 설치한 펜스가 둘러싸고 있다. 연합뉴스

개천절에 이어 한글날인 9일 서울 광화문 일대를 경찰 차벽이 다시 둘러쌌다. 야당은 “세종대왕 동상이 ‘문재인식 불통’의 상징인 차벽에 갇혔다”고 비판했지만, 여당은 “차벽은 막기 위한 벽이 아닌 살기 위한 방역의 길”이라고 옹호에 나섰다.

이날 경찰은 “경찰 버스 배치 등을 줄여 시민 불편을 최소화했다”고 밝혔다. 광화문 광장 도로변의 차벽은 그대로 두는 대신, 광장을 둘러싼 차벽은 ‘철제 펜스’로 대신하고, 90개 검문소를 57개로 축소했다는 것이다. 다만 투입한 경찰력은 개천절 집회 때와 비슷한 1만 1000여명 수준을 유지했다. 이날 보수단체들은 서울 보신각 앞에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의 입장문을 낭독하는 등 소규모 기자 회견으로 집회를 대신했다.

야당은 방역을 빌미로 한 경찰의 과잉 대응이 지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한글과 신문고를 만들어 소통의 길을 넓힌 세종대왕이 한글날인 오늘 울타리와 차벽에 갇혀 지낼 것”이라며 “정부는 연휴를 맞아 인산인해를 이루는 쇼핑몰 등 다른 곳에 대한 대책을 밝히라”고 공세를 폈다. 그러면서도 강경 보수단체와는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은 오늘도 광화문에 안 간다. 방역 지침을 준수한다”고 했다.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은 “경찰력은 개천절과 똑같이 동원해 놓고, 차벽 대신 철제 펜스를 늘린 것을 ‘통제 완화’라고 하는 건 국민을 기만하는 것”라며 “향후 국정감사에서 경찰력 동원이 적절했는지 따져 묻겠다”고 했다.

한글날인 9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일대에 경찰 차벽이 설치돼 있다. 뉴스1

한글날인 9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일대에 경찰 차벽이 설치돼 있다. 뉴스1

한글날인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를 찾은 시민들. 뉴스1

한글날인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를 찾은 시민들. 뉴스1

여당은 차벽 설치는 방역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이어갔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차벽은 일부 국민의 자유를 위해 모든 국민의 안전을 포기할 수 없는 당국의 불가피한 조치”라며 “국민을 막고 정부를 지키는 벽이 아니라, 감염을 막고 국민을 지키는 길”이라고 말했다. 최인호 수석대변인도 “집회를 강행하고 방역을 방해하는 세력에 대한 야당의 정치적 비호가 있다면 국민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여당 의원들은 전날 경찰청 국정감사에서도 경찰 차벽에 힘을 실었다. 오영훈 의원은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인용, “한글날 차벽 설치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조사 응답이 56.4%”라고 했고, 이형석 의원도 김창룡 경찰청장에게 “집회 때문에 엄청난 경제ㆍ사회적 비용이 지출되고 있으니 경찰이 단호히 대처해달라”고 요구했다.

한글날인 9일 경찰이 서울 종로에서 광화문광장 방향으로 진입하는 차량을 검문하고 있다. 뉴스1

한글날인 9일 경찰이 서울 종로에서 광화문광장 방향으로 진입하는 차량을 검문하고 있다. 뉴스1

이날 경찰이 서울 일대에서 불심검문이 폭넓게 진행된 것을 두고도 정치권에 논란이 일었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이미 광화문 일대가 원천 봉쇄됐는데 일반인을 불심검문하는 건, 방역 차단이 아닌 공포 분위기 조성”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개천절 집회 뒤 ‘불법을 빈틈없이 차단했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칭찬 뒤 경찰이 과잉 충성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여당 인사는 “불심검문이 과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국민 대다수가 코로나19 사태를 빨리 종식하길 원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했다.

야당의 비판은 최근 여권 일각에서 집회ㆍ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이나 검문을 강화하는 취지의 법안이 잇따라 나온 것과 무관치 않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 재난 예방을 위해 긴급하다고 판단될 경우 경찰이 강제 대피, 퇴거, 개인정보 제공을 요청하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는 법안을 냈다. 같은 당 이원욱 의원도 법 감염병 우려가 높을 시 집회를 원천 금지하되, 판사가 질병관리청장의 의견을 청취해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냈다.

불심검문은 2010년 9월 인권침해 논란으로 사실상 사라졌다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2년 나주 초등학생 성범죄 사건과 여의도 칼부림 사건 등 묻지마 범죄가 늘자 부활했다. 당시 민주당은 “국민 불안과 불만을 틈타 온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불심검문을 확대하는 공안 정치를 부활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손국희·김홍범 기자 9ke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