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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취업난… 20대들이 쓰러진다

중앙일보

입력

1999년 전남의 한 대학을 졸업한 뒤 공인회계사 시험에 도전해온 趙모(28)씨는 이달 초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숨졌다. 병원측이 밝힌 사인(死因)은 '스트레스성 심장마비'.

3년을 내리 낙방한 그는 지난해 초 아버지(56)마저 실직하자 말이 없어졌다고 한다. 가족들은 "집안 형편을 생각해 어디든 취직하라는 주문을 장남인 그가 견뎌내지 못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연세대 대학원을 졸업한 許모(28)씨는 행정고시에 네번 연속 실패한 뒤 지난해 가을부터 설사와 탈수증세를 보였고, 급기야 입이 돌아가는 마비증세를 보였다. 병원에서는 "신체적으론 이상이 없는 스트레스성 질병"이라고 진단했다.

스트레스를 못이겨 쓰러지는 20대가 부쩍 늘었다. 몇년째 계속된 경기침체와 취업난으로 사회 진출이 가로막히면서 급속히 나타난 이른바 'IMF세대 증후군'이다.

이들의 증상은 그동안 중년 이상의 전유물로 여겨져온 우울증.탈모.거식(巨食)증 등 정신적 질환에서 뇌졸중.반신마비, 심지어 돌연사까지 다양하다.

경희의료원.세브란스병원 등의 신경정신과에는 20대 스트레스 환자가 3~4년 전에 비해 두세배가 됐고, 명상원.요가원을 찾는 인구도 훨씬 늘었다.

연세대 이홍식(李弘植.정신과)교수는 "증후군을 겪는 20대들은 대부분 IMF 당시 대학에 다닌 세대"라며 "여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 강박감이 근본적 원인"이라고 말한다.

李교수는 지난해 명문대 인문계를 졸업하고 80여개 회사에 입사원서를 넣었으나 취직을 못해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던 金모(29)씨 사례를 들면서 "아쉽더라도 목표와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책"이라고 강조했다.

◇스트레스 클리닉에도 몰려='스트레스 합병 클리닉'을 운영하는 경희 한방병원에는 올들어 20대 남성이 전체 환자의 10%에 이른다.

이 병원 김종우(金鍾佑.한방정신과)교수는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이나 불면증 등으로 병원을 찾는 20대 남성이 주 5~6명을 넘는다"며 "대부분 취직 불안이나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했다.

명상원.요가원 등에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는 20대들이 몰린다. 한국 명상요가센터 관계자는 "전체 수강생 중 20대가 90% 정도로 취직과 직장문제에 대한 고민 때문"이라며 "한달에 20~30명씩 신규 수강생이 등록하고 문의 전화만 1백여통에 이른다"고 말했다.

연세대 황상민(黃相旻.심리학과)교수는 "IMF 후유증을 줄여나가기 위해선 대학이나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자율적으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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