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국가 과제] 아이보육 정부가 나서야

중앙일보

입력

고교를 졸업하고 보육교사 2급 자격을 딴 뒤 경기도 수원의 한 놀이방에서 3개월째 근무하고 있는 교사 金모(21)씨. 기저귀를 찬 만 24개월짜리부터 4세 어린이까지 20여명을 혼자서 돌본다.

원장과 운전기사 외엔 직원이 없어 기저귀 갈기.우유 먹이기.청소.빨래.식사 준비.귀가 지도까지 직접 해야 한다.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12시간을 일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 월 급여는 60만원.

"화장실 갈 시간이 없을 정도여서 파출부를 하는 게 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그는 말한다.

민간 어린이집 교사를 하다 지난해 그만 둔 서모(25.경남 마산시)씨. 그는 "보육교사들은 경력이 3년만 돼도 '할머니'소리를 듣는다"며 "경력이 쌓이면 월급이 조금이라도 오르게 마련이라 원장에게 '(저의 퇴직이)필요하면 알려주세요'라고 말하기까지 하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한국보육교사회의 조사 결과 보육교사들의 평균 경력은 3.5년에 불과했다.또 2년마다 직장을 옮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륜이 쌓일 시간이 없는 것이다.

여성개발원 유희정 연구위원은 "일본의 한 보육시설에서 교사들이 너무 잘해 물어봤더니 평균 경력이 13년이었다"며 "5년은 해야 교사가 제몫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상황은 너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5세 이하 아동을 돌보는, 보기에 따라서는 초.중.고교 교사 못잖게 사회적 기여를 하는 보육교사들의 현주소다. 계명대 오문자 교수는 "보육 시스템 개혁은 보육교사들의 처우.전문성 향상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육교사 전문성 향상=느슨한 보육교사 자격기준이 교사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있다. 고졸 이상의 학력이면 보육교사 교육원에서 1년 교육을 받고 보육교사 2급 자격을 딸 수 있다.

전문대졸 이상자에게 주는 1급 자격도 아동복지 관련 13개 학과 전공자가 보육 관련 10개 과목을 이수하면 얻을 수 있다. 반면 비슷한 기능을 하는 유치원 교사의 경우 초.중.고 교사 자격과 함께 관리되고 있어 4년제 대학이나 전문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필수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따라서 보육교사도 정부가 자격검증 절차를 만들고 자격증 제도를 정식으로 도입할 필요가 크다. 엄선하면서 자긍심도 주자는 것이다.

기존 보육교사에 대해서는 재교육을 강화해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보육교사회 이윤경 공동대표는 "영유아.장애아.방과 후 아동 교육 등으로 특화해 교사 재교육을 하는 게 절실하다"고 촉구했다.

◇교사 처우 개선=보육교사회의 조사 결과 보육교사들의 빨레(35%)와 설거지(31%).청소(29%) 등 잡무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3분의1이 휴식시간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따라서 유치원 교사 정도로의 처우 개선이 요청된다. 보건사회연구원 이상헌 책임연구원은 "2세 아동만 봐도 교사 1인당 13명을 맡고 있어 기준의 두배이므로 업무량을 줄여줘야 한다"며 "휴가.시간외 근무수당 등 각종 복지혜택도 부여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보육시설장.가정보육모 자격 관리=현재 보육시장에는 아무나 뛰어들 수 있을 정도로 자격.시설 기준이 느슨하다. 보육시설장의 자격 기준은 ▶1년 이상 진료 경력이 있는 의사▶사회복지 행정업무 3년 이상의 7급 이상 공무원 등이어서 보육의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아동 40명 미만의 시설은 보육교사 2급 자격만 있으면 경력이 없어도 설립할 수 있다.

가정보육모(베이비시터)는 특별한 자격기준 없이 알선업체 등에서 1시간~3개월의 교육만 받고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정부가 제도화하면서 공적 기관의 인증제 등 자격 관리.교육이 필요하다.

◇기업들의 보육 지원 시스템 강화=2000년 현재 직장 보육시설 설치 작업장의 수는 2백29개.전체 보육시설의 1.1%에 불과하다.

영유아보육법상 여성근로자가 3백명 이상 기업은 직장보육 시설을 설치하도록 돼 있지만 강제력이 없다.

직원들의 보육을 지원하는 기업에 대한 세제 등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근로자들이 집 주변 등의 보육시설을 선택하면 기업이 이용권(바우처)을 지원하는 방식의 도입도 요청된다.

<자문위원>
남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
서문희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유희정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
이윤경 한국보육교사회 공동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