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 이야기가 나온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모인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단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꺼낸 ‘노동개혁론’ 추진안을 기회로 삼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날 손경식 경총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공정경제 3법(기업규제 3법의 민주당식 표현)은 늦추거나 방향을 바꾸기 어렵다”는 발언에 대한 실망보다 김 위원장이 꺼낸 화두에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이날 아침식사를 겸한 자리에 모인 13인의 회장단 앞에서 손 회장은 ‘3% 룰’에 대한 완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3% 룰은 감사 및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최대 3%로 제한하는 내용의 규제다. 기업 감사의 독립성을 높이자는 게 정부ㆍ여당의 뜻이지만, 경영계는 “외국금융투기자본과 투기세력들의 참여를 허용해 기술 및 영업기밀을 노출시킬뿐 아니라 기업의 원활한 운영을 방해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손 회장은 이 자리에서 “김종인 위원장이 3% 룰에 대해‘나중에 상식선으로 귀결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줬다”며 “어제 이낙연 대표도 ‘3% 룰은 조정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밝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완화된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경총이 그나마 여지를 만들어줬다”며 손 회장을 응원했다고 한다.
노동개혁론으로 대화 주제가 이어졌을 땐 모든 참석자가 “중요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영계와 정치권에선 ▶실업보조금 수령요건 강화 ▶실업급여 지급기간 단축 ▶임시직ㆍ파견직에 대한 규제 완화 등이 노동개혁론의 주요 이슈로 꼽힌다.
이에 대해 참석자들은 “그동안 경영계가 목소리 낼 중심축도 없었고 계기도 없었는데 김종인 위원장이 꺼낸 주장을 계기로 삼아 더욱 적극적으로 주장을 펴야 한다”고 손 회장에게 당부했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이 6일 페이스북에“노동법 개편 제안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며 “일자리 변화 대응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고 밝힌 것도 경총 회장단은 호재로 받아들였다.
이날 모인 회장단이 가장 우려한 건 한국의 반기업 정서였다. “정부ㆍ여당이 기업규제 3법을 추진하는 원동력은 국회 다수 의석보다 국내 반기업 정서”라는 취지의 발언이 나왔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뿌리 깊은 반기업 정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앞으로 기업에 대한 규제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우리 기업들이 잘 하고 있는 부분을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역할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총은 이날 나온 회장단의 의견을 모아 건의문을 만들어 정부ㆍ여당에 낼 예정이다. 손 회장은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되도록 많은 의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개별 의원들도 만나 우리 의견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는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이장한 종근당 회장, 안병덕 코오롱 부회장, 조기행 SK건설 부회장 등이다. 손 회장은 공개 인사말에서 “기업들이 기업경영에 있어서 사회적으로 투명성이나 윤리성 등의 지적을 받은 경우도 있었지만, 이 또한 적극적으로 개선해 왔으며 이점은 국제적으로도 평가받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우리 기업들이 경영위기를 극복하고 고용유지에 전력해야 하는 시기임을 감안할 때 금번 국회에서는 기업에 부담을 주는 법안 논의를 보류하거나 위기 속에 있는 경영계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반영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