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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답답한 대통령, 공허한 종전선언

중앙일보

입력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 대통령 UN연설 다시 '종전선언' 촉구..미생지신 생각나 #지난 남북 북미정상회담서 실패한 선언..전략 다시 짜야

 2020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합의서를 들어 보이고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2020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합의서를 들어 보이고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1.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UN연설에서다시 종전선언을 촉구했습니다. 대단하다 그 인내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휴전상태인 6ㆍ25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고 평화체제로 나가자는데 누가 반대하겠습니까.그런데 답답한 건..이게 지금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것이죠.

종전선언은 문 대통령이 취임하기도 전부터 강조해온 꿈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지마자 남북회담을 추진했고, 2018년 두 차례 김정은과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합의문을 내놓았죠. 금방 종전이 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2.
문제는 종전이 남북이 합의한다고 되는 게 아니란 점이죠. 종전의 당사자는 남한이 아니라 북한과 중국, 그리고 미국입니다.

그래서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까지 밀어붙였습니다. 세차례나 북미정상이 만났지만 아무 성과가 없습니다. 종전선언이란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타결되어야 가능한 다음 수순이니까요.
비핵화 문제가 타결이 되지 않으니 종전이란 불가능할뿐 아니라 무의미하기도 합니다.
종전선언이란 그냥 상징에 불과합니다. 실질적으론 동전의 양면과 같은 평화협정이 중요합니다.
자연스럽게 군사정전위원회와 유엔군사령부 등 해체와 한미동맹의 근본적 변화가 뒤따라야겠죠. 그런데 이런 일들이 북한핵을 그대로 두고 가능할까요?

3.
답답한 건 남한의 대표, 문 대통령입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입장을 적극 옹호하며 미국을 설득해왔습니다. 이번 UN연설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데 정작 북한으로부터 참기 힘든 비아냥을 들어왔습니다. ‘추태’‘뻔뻔하다’를 넘어‘삶은 소대가리’란 비유까지 나왔습니다.
자신의 대화상대는 미국이지 남한이 아니라는 판단에 따른 무시입니다. 그렇게 도우려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다는 채찍질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표입니다. 그 수모 역시 국민이 같이 겪는 셈입니다. 좋은 취지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으면 대응도 달라져야 합니다.

4.
문 대통령을 보면‘미생지신’이란 고사성어가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중국 춘추시대 미생이란 사람이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여자는 오지 않고 폭우가 내려 익사했다는 고사입니다.
목숨을 걸고 약속을 지킨다는 좋은 의미도 있지만, 너무 융통성 없는 어리석음을 비꼬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대통령 혼자 죽는 일이 아니라 더 문제입니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치밀하게 되짚어봐야 합니다. 국제관계는 선의나 환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5.
미국이 최종 결정권자입니다.
지난 3년간 북미정상회담을 두고 벌어진 진상들이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과 우드워드 기자의 책으로 상당히 알려졌습니다.
미국은 우리 모르게 핵무기로 북한을 때리는 연습을 합니다. 북미회담 결론도 트럼프가 정합니다.

그렇다면 미국을 움직여야 하는데, 미국을 움직이는 것 역시 국익입니다.
미국은 북한핵 제거와 동시에 중국에 대한 봉쇄를 통한 세계적 패권의 유지를 바랍니다. 그 전략에서 남한은 매우 중요한 위치입니다. 미국은 자기편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6.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자기 편이었던 남한이 중국편이 되어가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문 정부 들어서자마자 중국에 약속한‘3불 선언’(사드 추가배치 안한다.미국 미사일체계편입 안한다.한미일 동맹 안한다)이 결정적입니다. 더욱이 북미정상회담 추진과정에서 남한은 미국의 신뢰를 더 잃었습니다.

7.
결론은 뻔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미국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미국을 설득해 북한을 움직여야 합니다.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불가능하겠죠. 그래도 한반도평화의 초석을 놓는다는 자세로 새로 시작해야합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이어가야할 진짜 국익의 길을 만들기위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