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핑' 제니와 꾸민 가상의 집…요즘 미술관보다 핫하다는 곳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코오롱스포츠 한남 플래그십 스토어에 설치된 디자인 스튜디오 '입자필드'의 영상 작업. 2D그래픽을 콜라주한 가상의 풍경 속을 달리는 도시인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사진 코오롱스포츠

2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문을 여는 ‘코오롱스포츠’의 플래그십 스토어 1층에는 제품이 하나도 없다. 대신 송예환‧입자필드‧팀 노드 등 주목받는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무성한 식물 사이로 디지털 기기들을 배치해 손가락으로 하늘·땅·물 위를 걸을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이 있는가 하면, 소리에 맞춰 반짝이는 LED 조명과 펄럭이는 거울이 도시의 밤을 떠올리게 하는 통로도 있다. 약 230㎡(70평) 규모의 공간을 둘러보며 전시를 감상하다 보면 지금 미술관에 온 건지, 패션 매장에 들른 건지 헷갈린다. 물론 한 층 아래에는 일반 매장처럼 각종 패션 아이템들이 진열돼 있다. 코오롱스포츠에 따르면 이곳은 상품 이상의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체험 매장’이다. 이곳의 전시 콘텐츠는 남산의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을 운영하는 전시 기획사 글린트와 협업한 결과다.

판매보다 전시 택한 패션 스토어 #설치미술, 미디어 아트 활용 #체험 원하는 소비자들의 놀이터

독특한 우주적 공간을 콘셉트로 매장 이상의 매장을 선보인 '아더 스페이스 2.0'. 사진 아더에러 공식 인스타그램

지난 7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문을 연 패션 브랜드 ‘아더에러’의 두 번째 공식 플래그십 스토어 ‘아더 스페이스 2.0’ 역시 독특한 브랜드 체험 공간을 표방한다. ‘균열’이라는 테마 아래 9개로 구성된 공간은 하나씩 차례로 관람할 수 있도록 동선이 짜여 있는 데 미술 전시관 관람 방식과 비슷하다. 땅이 솟아오르는 듯한 공간을 지나 멀티미디어 설치 작품을 관람하고, 시간이 멈춘 듯한 우주를 감상하고 나면 피팅룸과 옷이 전시된 공간이 나타난다.

젠틀 몬스터와 블랙핑크 제니가 함께 꿈꾼 판타지 세계를 구현한 ‘젠틀 홈’ 팝업 공간. 사진 젠틀몬스터

패션 매장이면서 색다른 공간 체험을 선사하는 브랜드의 원조는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 몬스터’다. 설치 미술가와 함께 매장에 작품을 전시하고 오래된 목욕탕을 개조해 쇼룸을 만들고,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 멤버 제니와 함께 가상의 집을 꾸미기도 했다. 작품 사이사이에 예술 작품처럼 놓여있는 선글라스는 자연스레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화장품 브랜드 ‘닥터자르트’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필터 스페이스 인 서울’이라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약 4년간 운영해왔다. 브랜드의 색을 표출할 수 있는 감각적 공간을 표방하며 벌써 14번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지난 11일부터는 ‘리페어’를 주제로 도자기, 옷, 장난감 등 고장 나고 상처 난 오브제를 수리해 전시하고 있다. 화장품의 ‘리페어(repair·재생) 효과’를 경험토록 한 것이다.

일상의 다양한 물건을 치유함으로서 화장품의 리페어 효과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닥터자르트의 '리페어 샵.' 고장난 오브제를 수리해 전시했다. 사진 닥터자르트

물건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게 1차 목적이었던 패션·뷰티 오프라인 매장들이 특별한 경험을 중시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브랜드의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 미술 작품이나 미디어 아트가 주로 활용된다. 이런 미술 전시형 공간 체험은 자연스레 ‘소비자와의 접점’을 만들고 브랜드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효과적이다.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역할도 한다. 코오롱스포츠 관계자는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쌍방향 ‘미디어 아트 전시’를 택한 이유는 차별화된 콘텐츠로 코오롱스포츠가 지향하는 아웃도어의 의미를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소리에 맞춰 반응하는 거울과 LED 조명으로 도심 속 빛과 공기의 움직임을 표현한 팀 노드의 작품. 사진 코오롱스포츠

잘 만든 오프라인 매장은 디지털과의 연계도 쉽다. 요즘은 매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온라인상에서 오프라인 공간의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다. 젠틀몬스터가 지난 5월 제니의 가상의 집을 형상화한 ‘젠틀홈’ 공간을 만들었을 때 해당 장소에서 제니가 직접 SNS 라이브를 진행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동시에 스마트폰 사진 필터인 ‘젠틀홈 페이스 필터’ 등을 출시해 디지털상에서도 젠틀홈의 분위기를 체험해볼 수 있는 연계 이벤트를 마련했다. 구진영 젠틀몬스터 마케팅 파트장은 “스마트폰으로 일상을 공유하는 게 자연스러워지면서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매장을 통한 공간 마케팅은 주요한 흐름으로 떠올랐다”며 “앞으로는 잘 만든 오프라인 공간을 온라인 공간과 얼마나 원활하게 연결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