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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소설 속 분신처럼…야구도 글쓰기도 홈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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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고려대 강인규. [사진 고려대학교 SPORTS KU]

고려대 강인규. [사진 고려대학교 SPORTS KU]

야구에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이란 규칙이 있다. 세 번째 스트라이크에서 포수가 공을 잡지 못할 경우, 포수가 태그하거나 송구하기 전에 타자 주자가 1루에 도착하면 출루를 인정한다. 고려대 야구부 4학년 강인규(23)가 쓴 소설 제목이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사진)이다. 그는 “삼진이라도 열심히 뛰면 기회가 올 수 있다. 그 느낌이 좋아 제목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소설 내고 드래프트 도전 대학생

현역 야구선수가 소설을 쓰는 건 드문 일이다. 강인규는 “4년간 학교를 오가며 조금씩 썼다. 출간할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야구선수로서 그의 롤모델은 프로야구 LG 트윈스 박용택(41)이다. 박용택은 “운동하면서 글을 썼다니 대견하다”고 칭찬했다. 공부도 열심이다. 지난 학기(4학년 1학기) 학점이 4.3이고, 장학금도 받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

강인규는 초등학교 시절 테니스를 배웠다. 테니스를 그만둔 그는 2008 베이징 올림픽을 보고, 남보다 늦은 중학교 1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교사인 부모는 반대했다. 그의 뜻이 확고했다. 오전 5시 30분에 지하철을 타고 1시간 거리인 신월중까지 통학했다. 기피 포지션인 포수를 자원했다.

무릎을 다쳐 1년간 배트를 놓았지만, 포기하지 못했다. 해체 위기에 몰렸던 신월중에서 기회가 열렸다. 그는 “부모님이 나중에는 허락하셨다. 대신 학원도 다니고, 신문도 읽기로 약속했다. 야구 일지도 매일 썼다. 덕분에 책을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설 주인공 강파치는 강인규의 분신이다. 야구 실력이 모자라 ‘깨스통(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선수)’으로 불린 주인공의 성장기다. 공을 받다 고환을 다쳐 수술한 내용, 선배들과 코치님들의 눈치를 보며 훈련하던 내용 등이 생생히 담겨 있다.

강인규는 "소설 속 인물들의 이름을 정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 파치의 이름은 깨트릴 파(破), 어리석을 치(癡) 자를 썼다. 나머지 인물은 포수에게 '장일포'란 이름을 붙여준다든지, 투수는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강두기에서 차용한 '가두기'란 이름을 준다든지 캐릭터를 살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파치처럼 강인규도 늦은 시작을 만회하려고 부단하게 노력했다. 중학교 때 무릎을 다친 것도 요렁을 모른 채, 무작정 연습하다 연골이 닳아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노력은 결실로 이어졌다. 2016년 덕수고 시절 청룡기에서 홈런상을 받으며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하지만 프로 구단의 선택을 받진 못했다.

그는 “대학 진학 후 열정이 식어 그만둘까 생각도 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학년 때부터 틈틈이 쓰기 시작했는데, 예전의 의지를 다시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인규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국어 교사이자 1998년 등단한 시인이다. 강인규는 "고등학교, 대학교 감독님도, 친구들도 내가 책을 썼다니 놀랐다"고 쑥스러워했다.

야구를 잘하고 싶어 개명도 한 강인규(옛 이름 강준혁)는 21일 열리는 프로야구 드래프트를 기다린다. 올해 성적은 타율 0.396, 2홈런 18타점. 그는 “고등학교 때 삼진(드래프트 미지명)을 당했지만, 프로에 가기 위해 열심히 했다. 낫아웃처럼 다시 한번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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