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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학테러리즘 약사]

중앙일보

입력

생화학테러는 20세기 현대 전쟁에서 기술발전과 대체로 연관이 있으나 군인과 시민들을 살상하기 위해 독과 질병을 사용한 사례는 17세기 박테리아가 발견되기 훨씬 전인 14세기까지 거슬로 올라간다. 다음은 미 ABC 방송이 최근 보도한 생화학테러 약사.

▲1346년= 이탈리아 항구도시 제노바의 카파항(港) 포위공격을 하던 타르타르인(人)들은 페스트(흑사병)가 돌발하자 작전을 포기했으며 철수하기전 투석기로 동료의 시신을 성 안으로 던져넣었다. 유럽에서 창궐한 2차 페스트(4년간 2천500만명 사망)도 부분적으론 생물학전(戰)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518년=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도 코르테스는 멕시코 원주민 아즈텍족에게 천연두를 퍼뜨려 1521년 완승을 거둔다. 1530년대 잉카 문명 전역에 코르테스가 도착한 후 천연두가 창궐했다.

▲1675년= 네덜란드 과학자 겸 상인 안토니 레오이벤회크는 렌즈 연마 법을 배운뒤 확대경을 만들어 박테리아를 처음 발견했다.

▲1710년= 러시아군은 스웨덴과 전쟁 중 전염병을 확산시키기 위해 페스트 희생자 시체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67년= 영국 장군 제프리 암허스트는 프랑스군을 돕고 있던 북미 인디언에게 천연두에 오염된 담요들을 살포, 캐릴론 기지를 함락시켰다. 영국군은 두차례 기지를 공격했으나 대패했었다.

▲1855년= `미생물학의 아버지' 루이 파스퇴르(프랑스 화학자)는 효모(이스트)가 살아 있는 유기체임을 입증, 세균의 존재와 세균 무기화 가능성을 밝혔다.

▲1914-1918년= 제1차 세계대전중 염소(클로린)와 이페릿과 같은 화학무기가 처음 대량 살포됐다. 1915년 독일은 프랑스 이프레 인근 랑즈마크 마을에 가스무기를 사용했고 영국과 프랑스도 곧 가스로 대응했다. 1918년엔 포탄 4개중 1개에 다양한 가스가 장착됐다.

▲1925년= 1차대전때 화학무기 사용은 생화학무기 사용을 금지한 제네바 의정서를 이끌어냈으나 이 의정서는 연구와 생산까지 금지하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모든 강국들이 이 의정서를 비준했다.

▲1930-1940년대= 일본은 생물무기를 실험하고 중국과 만주에서 사용했다.

▲1942년= 영국은 스코틀랜드 연안 그루이나드섬에서 양에 대해 탄저균 실험을 실시했다. 현재 사람이 살지 않은 이 섬은 아직도 탄저균 포자에 오염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69년 11월25일=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생물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생물전 정책을 발표했다. 미국은 1973년까지 연구목적의 종자를 제외한 모든 생물무기 비축고를 파괴했다.

▲1972년= 공격적 생물무기의 연구.개발.생산을 금지하되 생물무기지역의 예방적 활동을 허용하는 생물무기협정(BWC)이 체결되고 미국.소련 등 143개국이 비준했다.

▲1979년= 러시아 도시 스베르들로프스크에서 탄저병이 발생, 64명이상이 사망했다. 당시 소련 정부는 탄저균에 감염된 고기가 원인이라고 밝혔으나 국제 전문가들은 인근 생물무기시설에서 탄저균 포자가 사고로 누출된 것으로 추정했다. 92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이 사고가 미생물시설과 관련있음을 시인했다.

▲1980-88년= 화학무기가 이란-이라크 전쟁 때 주로 이라크군에 의해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91년 페르시아만(걸프)전쟁 후 이라크에 대해 화생방무기 프로그램을 중단하도록 명령하고 유엔특별사찰단(UNSCOM)이 이라크 시설에 대해 사찰을 시작했다.

▲1995년= 일본의 사이비 종교단체인 옴 진리교 신자들이 도쿄(東京) 지하철역에 살상용 사린가스를 뿌려 12명이 사망하고 5천여명이 부상했다. 살포된 사린가스의 독성이 비교적 약하고 살포방법이 치밀하지 못해 당초 예상보다 사상자는 적었다. 옴 진리교는 탄저균 등 다른 생물무기도 실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998년= 미 국방부 모든 군인들에 대해 탄저균 예방 백신 투하를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권오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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