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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피해자, 다른 성폭력 신고했는데…市 "인연 모두 소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의 피해자 A씨가 지난 4월 발생한 서울시 비서실 내부 성폭력 피해자와 같은 인물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서울시의 대응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4월 성폭력 사건 당시 서울시가 이를 인지했음에도 B씨에 대한 인사 조치를 뒤늦게 했고 피해자와 직무 관련성이 높은 곳으로 전보 조치를 하는 등 2차 가해 가능성에 대해 둔감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B씨가 전보 조치된 부서는 피해자와 업무 연관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A씨 “비서실 직원 B씨에 성폭행 당해” 신고

지난 7월 22일 서울 중구 한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왼쪽 두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22일 서울 중구 한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왼쪽 두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 대리인인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변호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2차 피해를 우려해 밝히지 않았는데 서울시의 미온적인 대처 등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이 사실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며 이번 사건 피해자와 4월 비서실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동일인물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와 피해자 지원단체 등은 “A씨가 시장 비서실에 근무한 2015년 7월~2019년 7월 박 전 시장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해왔다. 박 전 시장이 A씨의 무릎에 입을 맞추는 등 집무실에서 여러 차례 A씨 신체를 접촉했고 사진 등을 보내기도 했다는 게 A씨 측 주장이다.

A씨 측은 또 4·15 총선 전날이던 4월14일 A씨가 같은 비서실 직원 B씨와 술자리가 있었는데 이날 밤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김 변호사와 A씨 지원단체 등에 따르면 당시 서울시 비서실 소속 B씨는 저녁 술자리가 끝난 뒤 A씨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경찰은 법원에 B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6월 초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B씨를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3개월 정도 뒤인 지난 10일 B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4월 사건 당시 서울시 “언론 통해 심각성 인지”

지난 4월24일 김태균 서울시 행정국장은 온라인 브리핑을 갖고 "코로나19로 상황이 엄중한 시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며 "책임을 통감하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뉴스1.

지난 4월24일 김태균 서울시 행정국장은 온라인 브리핑을 갖고 "코로나19로 상황이 엄중한 시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며 "책임을 통감하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뉴스1.

문제는 사건 당시 서울시의 대응이었다. 서울시가 B씨를 대기 발령하고 직위 해제한 건 각각 4월23일과 24일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9~10일이 지나서다. 당시 서울시의회 운영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서울시는 “피해자가 경찰서에 고발은 했지만 시 내부에 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서 (사건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나 계기가 없었다”고 답했다. 그러다 4월23일 사건에 관한 첫 언론보도가 나온 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B씨를 직위해제하기 3일 전인 4월21일, 이미 B씨를 당시 행정1부시장 산하의 한 부서로 전보 조치했다. A씨 측은 이를 두고 “서울시가 설명과는 달리 사건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특히 해당 부서는 A씨와 직접적인 업무 연관성이 있는 부서라는 게 A씨 측의 주장이다. A씨는 B씨가 전보 조치 된 지 하루만인 4월22일 당시 인사기획비서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저와 밀접한 업무 연관성이 있는 업무”라며 B씨 징계를 요구했다. 하지만 해당 비서관은 “A씨와 B씨의 인연이 모두 소중해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답을 보내왔다고 한다.

‘무관용 원칙’이라더니…피해자 연관 부서로 발령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지난 7월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지난 7월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재련 변호사는 “통상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를 즉시 직위해제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인데, 서울시는 오히려 이 직원을 A씨와 업무 연관성이 있는 부서로 이동시켰다”며 “매우 잘못된 조치”라고 비판했다. 당시 서울시의 ‘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에는 “피해자가 행위자와 업무공간 분리를 원할 경우 부서(팀) 재배치, 근무장소 변경 등 부서장이 즉시 시행 가능한 방법을 통해 지체없이 분리 조치해 추가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고 돼 있다. 무관용 원칙도 담겨 있다. 서울시가 B씨를 전보 조치한 시점(21일)을 고려하더라도 사건 발생 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고 A씨와 업무 영역이 분리되지 않은 부서에 배치했다는 점에서 납득이 안 된다는 게 A씨 측 주장이다.

그러나 서울시의 설명은 다르다. 서울시 관계자는 “업무 분장을 봐도 B씨가 A씨에게 연락이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물리적으로도 상당한 거리를 두고 분리돼 있다”고 해명했다. 직무배제 조치가 늦은 이유에 대해서는 “4월24일 경찰의 수사개시 통보가 있어 그날 직위를 해제했다”며 “가해자에 대해 보다 신속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한 점은 죄송하다”고 말했다. 직위해제는 대상자의 지위나 업무를 소멸시키는 것으로 파면과는 다르다.

서울시는 현재 해당 사건에 대한 자체조사를 멈춘 상태다. 서울시 관계자는 13일 “지방공무원법 73조 2항에 따르면 검찰·경찰 그 밖의 수사기관에서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 개시 통보를 받은 날부터 징계절차를 진행하지 아니할 수 있다”며 “하나의 사건을 둘 이상의 기관에서 조사하는 것은 객관성 문제 등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허정원·최은경·강광우·편광현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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