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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소 콤플렉스 - 원죄인가 ?

중앙일보

입력

"이건 죄악이야..."
성(性)에 대한 치료와 연구를 업으로 하고 숱한 <꼬추>를 접할 기회가 있는 사람에게서 이런 말이 나오게 할만큼 심각한 환자를 가끔 본다.

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도 죄가 되는 줄 알지만, 그만큼 남자의 음경은 그 크기의 기능적-생리적 측면을 떠나서 외관의 잣대로 보는 관찰자의 눈에 의해 '미운 죄'를 쓴다.

죄 지은자의 속성인가. 목욕탕에서, 화장실에서, 모든 옷 벗는 곳에서 그것은 감추기와 숨기기로 나타난다. 왜소 콤플렉스다.

나폴레옹의 '손가락 사건'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왜소증 환자였으며 그 왜소증의 열등감을 숨기려는 노력과 과민반응이 그를 영웅으로 만든 원동력이 됐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

인간의 음경성장은 20세 경이면 그 발육을 멈춘다. 왜소음경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것이 17세 경까지 자란 기억밖에 없다고 한다. 어떤이는 어릴 적부터 파묻혀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않더라고도 말한다. 그것을 나타내는 말도 번데기, 자라, 손가락 등으로 크기와 모양을 비슷하게 나타낸다.

아무튼 성장 후 어떤 방법으로든 자연적으로는 그 크기를 조절할 수 없다는데서 왜소음경에 대한 고민은 뿌리한다.

옛날 가나의 어느 종족은 어릴 적부터 음경에 추를 달고 다니는 풍습이 있었다. 추의 중력으로 늘어난 음경이 웬만한 길이가 되면 추를 제거한다는 것. 거근을 위한 '웨이트베어링 요법'이라고나 할까?.

어느 지방에서는 독초를 짓이겨 음경에 바르고 그곳이 부어 오르기를 기다린다. 독에 의해 한번 부어오른 그곳에는 조직내부 -그러니까 해면체와 근막 사이- 에 섬유화가 일어난다. 그래서 상처가 다 나아도 그곳이 커진 상태가 유지된다. '스웰링 요법'이다.

강원도 어디에는 음경에다 봉침을 쏘아주고 돈을 받아 챙기는 민간요법(?)이 있다하니 이것도 말하자면 '스웰링 요법'과 같은 것일 터.

죽어야 산다는 말은 그 말이 허위일 때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섬유화가 생기지 않고 고름이 생길 수 있고 늘어나라 했는데 괴사조직은 실질량이 줄어 수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려해야한다.

'거근 숭배사상'은 개인적인 문제에서 발생하지만 역사와 사회. 문화적으로도 뿌리 깊다. 미켈란제로의 미술품이나 로뎅의 조각 작품 등에 흔히 볼 수 있는 남자의 나신상에는 오히려 성기가 너무도 작게 나타난다. 이것은 '거근 숭배사상'을 역설적으로 비꼬는 데서 나온다.

영화<미스터 굿바를 찾아서>의 굿바는 바로 거근을 나타낸다는 것은 모두들 안다. 무대가 된 코퍼 해치(copper hatch)’라는 술집에는 지금도 입구에 Good Bar의 모형이 걸려 있고 Good Bar를 가진 미스터를 찾아서 여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굿바가 좋은 것은 사실인데 그것은 커녕, 왜소증 환자들은 신의 공정치 못한 원죄에 분노라도 느껴질 판이다.

왜소음경은 왜 생기나? 전문가인 나도 잘 모른다. 단지 그냥 손이 작은 사람 있고 코가 작은이가 있듯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복부의 지방에 파묻힌 함몰음경은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화두에서 '죄악'이라 말한 병적인 왜소 음경은 소아기때 테스토스테론과 시상하부호르몬의 불균형에 의한 성선의 미숙으로 생기는 것으로 만명에 몇 명꼴로 얼마 되지 않는다.

남자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심리적 왜소는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거근 숭배사상'의 반작용이거나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숙명 같은 '비교의 함정' 이라고나 할까?

그 정도면 괜찮다고 타일러도 아무래도 꺼림칙한가보다. 아무튼 이들이 원죄를 타고난것이 아니란 것쯤은 알았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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