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빈자리 노린다...한·중·미 스마트폰 업체 ‘동상이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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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화웨이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퇴출당할 가능성에 점차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 경우 관심사는 화웨이의 빈자리를 누가 메울 것인가로 쏠린다. 업계 2위인 화웨이가 잃어버린 시장 점유율을 누가 많이 가져가느냐에 따라 스마트폰 시장 지형이 요동칠 수 있다. 한·중·미 스마트폰 업체간 치열한 쟁탈전이 전개될 전망이다.

화웨이 내년 스마트폰 출하량 5000만대로 폭락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화웨이는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신작 ‘메이트40’의 부품 주문을 30%가량 줄였다. 반도체·통신칩 공급을 원천 차단한 미국의 제재로 부품 수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중국 IT 매체인 테크웹은 8일 “화웨이가 확보한 기린9000의 재고는 1000만개뿐”이라고 보도했다. 6개월 정도 버틸 수 있는 양이다. 기린9000은 화웨이의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개발한 최신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다.

관련 업계에서는 최악의 경우 내년 화웨이의 스마트폰 출하량이 5000만대 안팎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올해 판매량 예상치(약 1억9000만대)보다 70% 넘게 줄어든 수치다. 화웨이는 지난해에는 약 2억4000만대를 팔았다. 시장조사업체인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내년 화웨이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올해 전망치(15.1%)보다 크게 줄어든 4.3%까지 폭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 SA가 예상한 내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출하량은 13억7000만대. SA의 전망대로라면, 화웨이의 판매량은 5900만대 그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국 '호랑이 없는 굴 여우 세 마리' 맹주 노려

스마트폰 업계는 각자 '동상이몽'에 들어갔다. 관련 업계에선 중국 브랜드가 최대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삼성전자나 LG전자, 애플에도 판매량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에서는 '호랑이(화웨이) 없는 굴에 여우 세 마리(비보·오포·샤오미)'가 맹주 자리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인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의 점유율은 46%로 압도적 1위다. 뒤를 비보(16%)와 오포(16%), 샤오미가(10%)가 쫓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브랜드가 화웨이의 빈자리를 대부분 메울 것으로 전망한다.

삼성, "중국에서 스노우볼 효과 만들 수 있을 것"  

다만, 플래그십을 포함한 고가폰 시장에선 애플의 수혜가 예상된다. 중국 시장 점유율 8%인 애플은 아이폰11과 아이폰SE 등이 판매 호조를 보이며, 2분기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2% 늘었다. 중국 점유율이 1% 미만으로 몰락한 삼성전자에도 재도전의 기회가 올 수 있다. IT 매체인 샘모바일은 7일 SA의 자료를 인용 “삼성과 애플이 중국에서 플래그십(전략폰)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일부 가져갈 가능성이 있다”며 “삼성전자는 플래그십 판매를 통해 브랜드 인지를 높이며 스노우볼(눈덩이 키우기) 효과를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올 2분기 기준 주요 지역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올 2분기 기준 주요 지역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유럽시장은 화웨이 대신해 샤오미 약진할 듯  

유럽시장에서는 화웨이의 빈자리를 삼성과 애플·샤오미가 나눠 가질 것으로 보인다. 올 2분기 기준 화웨이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18%로 3위다. 2위인 애플과 1%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특히 샤오미의 약진이 예상된다. 샤오미는 시장조사업체인 카날리스 조사에서는 올 2분기 유럽시장에서 화웨이를 제치고 점유율 17%로 3위에 올랐다. 카날리스는 “2분기 유럽시장에서 샤오미의 프리미엄폰과 중저가폰 판매량이 모두 늘며 전년 동기 대비 출하량이 65% 증가했다”고 밝혔다.

중남미 시장에선 LG전자 반사이익 기대  

화웨이가 점유율 9%를 차지하는 중남미 시장에서는 삼성전자는 물론 LG전자도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중저가폰 비중이 큰 중남미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43%로 압도적 1위고, 다음은 모토롤라(22%)다. 샤오미와 LG전자는 각각 5% 정도다. 화웨이의 존재감이 미미한 인도에서는 화웨이와 상관없이 국경 충돌에 따른 ‘반중 정서’에 힘입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점유율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트럼프, 화웨이에 퇴로 열어줄까

다만, 이런 전망은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가 사실상 퇴출 수순을 밟는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만약 과거 중국 ZTE 사례처럼 미·중이 극적으로 합의하면 화웨이는 회생할 수 있다. 지난 2018년 초 미국은 중국 2위 통신장비업체인 ZTE가 이란 제재 규정을 어겼다며 미국산 반도체 등을 수출 금지하는 조처를 내렸다. 이후 ZTE는 파산 위기까지 몰렸지만, 미국이 벌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미·중이 합의하면서 기사회생했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퀄컴이 화웨이에 모바일 AP를 팔 수 있도록 판매 제한을 철회해 달라고 미국 정부에 로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화웨이 제재로 미국 기업의 손해가 커지고 반발이 심해지면 대선을 앞둔 미국 트럼프 정부가 화웨이에 퇴로를 열어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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