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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기현의 철학이 삶을 묻다

'국민 동의 없이 시민 자유 제한 안된다'는 근대 자유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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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권위주의에 도전한 존 로크

네덜란드의 화가 로멘드 호헤가 1689년 4월에 오렌지공 윌리엄과 그의 부인 메리 스튜어트의 공동 대관식 장면을 기록한 그림이다. 윌리엄과 메리가 통치권을 의회에 이양함으로써 유혈사태 없이 명예혁명이 완성된다. [사진 위키피디아]

네덜란드의 화가 로멘드 호헤가 1689년 4월에 오렌지공 윌리엄과 그의 부인 메리 스튜어트의 공동 대관식 장면을 기록한 그림이다. 윌리엄과 메리가 통치권을 의회에 이양함으로써 유혈사태 없이 명예혁명이 완성된다. [사진 위키피디아]

“모든 것은 변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말이다. (변화를 지배하는 법칙까지도 변화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공간 속 사물들은 모두 변한다. 나이를 먹는 것도 변화일진데, 시간의 흐름 속에 변화를 견딜 존재는 없다.

인간의 평등을 ‘자연적 권리’로 규정 #정부-개인, 기본권 방어 계약관계 #정부 통치권은 시민으로부터 나와 #권위주의는 근대 유산에 대한 배신

변화는 연속을 전제로 한다. 역사 속에서도 대체로 대부분 유지되고 적은 부분들이 변한다. 격변의 시대도 예외가 아니다. 이전보다 좀 더 변하기에 눈에 더 뜨일 뿐. 그래서 혁명이라는 표현을 조심해야 한다. 없던 것이 느닷없이 발생하는 일은 역사에 없다. 보이지 않는 틈에 익어 오던 것이 눈에 띄는 변화로 열매를 맺는 것이 혁명이다. 어떤 힘이 모여 17, 18세기 서양을 소위 혁명기로 채색하였을까?

이성과 사랑이라는 유산

근대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중요한 유산의 하나는 이성이다. 고대에 자리 잡았다. 기독교가 절대적 힘을 갖게 되는 중세를 잘 견뎌왔다. 신앙과 갈등을 겪었지만 소실되지는 않았다. 갈등의 이면에서 중세인들은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신앙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려 하였다. 살아있었기에 갈등을 겪었다.

중세의 기독교도 유산을 남긴다. 기독교에는 영혼의 구원과 연관된 형이상학적 주장뿐 아니라, 사회윤리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인간은 신의 자식으로 평등하고 존엄하니,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이다. 평등하게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라는 생각이 완고한 계급사회에서 빛을 보지는 못하였지만, 시민들의 마음에 푯대로 자리잡았다.

탈권위주의

근대에 들어오면서 버려진 것은 무엇인가? 권위주의다. 고대사회에서는 귀족들이 주인이었다. 이들이 이성을 독점하여 사회 질서를 꾸려가고, 여타의 개인들은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종속물로 이해되었다. 중세의 신학적 질서 역시 권위주의적인 체계다. 교회가 성서에 쓰인 가르침을 해석하는 전권을 갖고 있었다.

개인은 자유롭고 존엄하다는 의식이 널리 퍼지면서 권위주의는 도전을 받는다. 진리를 새로이 발견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 되었고, 윤리적 규범도 시민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출발점으로 하여 재구성되어야 했다. 시민이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며, 진리도 규범도 개인의 이성에 의해 승인되어야 하는 반전이 이루어졌다.

자연상태, 자연권, 자연법

존 로크(John Locke)는 이성과 사랑이라는 유산을 새로이 탄생한 개인의 권리와 조합하여, 자유민주주의의 초석을 놓는다. 자연 상태를 묘사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생명을 보존하고자 하여 쾌감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 한다.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자유와 건강을 추구하고 자기 것을 챙긴다. 생명·자유·재산에 대한 권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누리는 자연적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인간의 자연 상태는 동물의 왕국과 다르지 않다. 홉스가 본 자연 상태는 여기까지다. 로크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이 인간의 자연 상태를 동물의 상태에 머물러 서로 물고 뜯게 놔두지 않는다. 이성은 내가 갖는 기본권을 나의 이웃도 갖는다는 것을 가르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독립적이므로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명·건강·자유·소유를 해칠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자연적 권리가 이성적 성찰을 통과하면서 서로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의무가 마련되는데, 로크는 이를 자연법이라 부른다.

정당한 정부

자연권을 서로 존중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이 도리이기는 하나, 모든 규범이 그렇듯이 항상 잘 지켜지지는 않는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신의 기본권이 위협받을 때 개인은 방어할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개인이 각자 재판관이 되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면, 객관성과 정당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분쟁이 꼬리를 문다.

시민들은 이런 불편함을 없애기 위하여 제3자를 내세워 자연법이 공평하게 행사되도록 계약을 맺는다. 이렇게 정부가 설립된다. 정부의 권력은 시민들의 계약에 기원하기에 정부는 시민으로부터 주어진 권한 내에서 활동하여야 한다. 통치권은 시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이념이 이렇게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자리잡는다.

저항권

로크는 왕정, 과두정, 의회를 통한 민주정 등 다양한 형태의 정치체제를 인정한다. 어떤 모습이든 시민의 자연권을 존중하고, 시민에 의하여 양도된 권한 내에서 공익을 위하여 권력을 사용하면 된다. 정부는 그런 한에서만 시민의 복종을 요구할 수 있다. 만약 시민 정부가 구성원의 생명·자유·재산과 관련된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포식자 역할을 한다면, 시민은 기본권을 되찾기 위하여 정부를 전복하여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권리를 갖는다. 저항권은 정부가 주어진 권한을 넘어 권력을 과용하지 못하게 긴장을 주고 폭정을 예방하는 순기능을 수행한다.

영향과 의미

로크의 생각은 당시 유럽에 널리 퍼져있던 자연권 이론과 계약론을 정교하게 조합하여 구성되었는데, 개인의 자유가 강조된 급진적인 형태다. 당시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을 이끈 사람들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시민의 자유를 극대화하고 정부의 권한을 최소화하는 로크의 자유주의는 이후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된다. 자유를 사회의 전통과 문화로부터 떼어내 초월적인 가치로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쟁이 있다. 경제 문제에 적용되면 논쟁은 더 뜨거워진다. 재산권 행사와 관련하여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시장주의)는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반론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이 논쟁은 진행 중이며, 비판에 대응하며 자유주의는 진화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그를 둘러싼 세부적 논쟁들을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를 남겼다. 때론 자유주의를 물질적 만족을 추구하는 이기적 탐욕과 연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자유주의의 기본 정신을 오해한 소치다. 자유주의는 인간의 쾌락에 대하여 열린 태도를 갖지만, 나만의 이익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랬기에 자유주의는 타인의 기본권도 내 것만큼 존중해야 한다는 시민의식을 길러낼 수 있었다.

정부와의 관계에서는 반(反) 권위주의라는 유산을 남겼다. 자유주의는 재산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불가피하다는 국민의 동의가 있는 한에서다. 국민의 설득과 동의 없이 정부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여서는 안 된다. 로크가 대변하는 근대의 자유주의가 인고의 과정을 거쳐 후세에 남긴 가르침이다.

존 로크

존 로크

◆존 로크(1632~1704)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후에 철학에 관심을 갖고 인식론과 정치철학에 큰 업적을 남겼다. 특히 근대의 경험론을 정초한 인식론자로 유명하다. 리처드 보일, 뉴턴 등의 과학자들과 영국 왕립학회에 참가한 이력이 영향을 미쳤다.

당시 영향력 있는 정치가였던 애슐리 경(후에 섀프츠베리 백작)의 주치의가 되어 수술로 그의 생명을 구해준 것이 로크의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애슐리 경의 후광으로 식민지와 무역에 관한 정보를 담당하는 고위 관료로 봉직하기도 하였고, 혁명세력에 가담하여 네덜란드로 도피·망명하는 고난을 겪기도 하였다. 명예혁명이 성공하여 영국으로 돌아와 여생을 학문 연구로 보냈다.

김기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