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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뉴딜 펀드에 관치 금융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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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한·KB금융 등 국내 10대 금융 지주사 회장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장소는 청와대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였다. 정부는 이날 190조원의 뉴딜 펀드 얼개를 발표했다. 향후 5년간 정책금융에서 100조원, 민간 금융 70조원, 국민 참여 펀드 20조원을 조성해 데이터센터·신재생에너지 같은 디지털·그린 인프라와 관련 기업 등에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4차 산업혁명과 기후변화에 선도적으로 대응하고, 넘치는 부동자금을 생산적인 방면에 끌어들인다는 목적이다.

민간 금융의 70조원 참여에 대해 정부는 “각 금융사가 발표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석연찮다. ‘관치(官治) 금융’의 냄새가 짙다. 뉴딜 펀드는 투자 분야 정도가 정해졌을 뿐이다. 투자 대상 등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된 게 없다. 고객 돈을 맡아 굴리는 민간 금융회사들이 ‘깜깜이 투자’ ‘묻지마 투자’ 식으로 투자 규모를 밝힐 계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70조원이란 숫자가 나온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또한 10대 금융지주 회장을 모두 청와대로 끌어모으기까지 했다. “팔 비틀기식 관치 금융”이란 의심을 사는 이유다.

한때 여권이 내세워 불법 논란까지 일었던 뉴딜 펀드 원금 보장은 없던 일이 됐다. 대신 정부가 손실을 우선 끌어안기로 했다. 민간의 펀드 참여를 독려하려는 조치다. 하지만 정부가 끌어안는 손실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관치 정책금융의 숨은 그림자다. 과거에도 관치 정책금융은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녹색성장을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의 ‘녹색 금융’이 그랬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 금융’과 ‘통일 대박’에서 비롯된 통일 펀드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주가 덕에 문재인 정부가 만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펀드가 수익을 내고 있으나 코로나19 등 변수가 많아 속단키 어렵다.

지금은 갈 곳 잃은 자금이 넘치는 상황이다. 가능성이 보이는 분야에는 구태여 정부가 나서 대규모 투자 자금을 조성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카카오게임즈 공모주 청약에만 무려 59조원이 몰렸다. 초대형 관제 펀드는 오히려 “안 되는 사업을 억지로 키우려 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신호를 줄 우려마저 있다. 진짜 시급한 건 규제 혁신이다. 170만 명이 이용하던 타다 서비스를 폐업시키는 ‘규제 리스크’가 도사린 판에 디지털·그린 뉴딜 같은 신산업에 투자금이 쏟아지기를 바랄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