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 바람' 분다

중앙일보

입력

그윽한 차향(茶香)이 넘쳐나는 전남 보성군의 농민들이 바빠졌다.

김치 ·음료 ·된장 ·간장 등 각종 가공식품에 건강에 좋다는 녹차가 원료로 사용되면서 부터다.녹돈(綠豚)과 녹차막걸리도 등장했다.

녹색바람이 불고있는 녹차재배 ·가공현장을 찾았다.

전남 보성군 미력면 농공단지 안 녹차김치 공장.손맛이 뛰어나 선발된 이 지역 주부 10여명이 김치를 버무리느라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다.

“녹차가 몸에 좋은 건 다 앙께….”

주부사원 김동님(50 ·여 ·벌교읍)씨는 녹차김치가 많이 팔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지난달 매출액은 8억원.내년 매출 목표액도 1백억원이나 된다.

이 공장은 30대 후반의 젊은이 네명이 지난 6월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생산 초기부터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이 회사 사장 남찬우(35)씨는 “학교 급식이 확산되면서 김치 수요가 늘고 있고 녹차 김치 인기가 꾸준해 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남 보성을 중심으로 한 ‘녹차 바람’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녹차 가공공장을 비롯해 녹차를 원료로 한 갖가지 녹차산업이 호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1996년 녹차 캔 음료를 선보인 영농조합 보성녹차(보성군 미력면)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OEM(주문자 상표 제품)생산량을 포함,한달 평균 3백50만 캔을 생산하는 등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이 50억원인 이 회사는 올해 매출액을 70억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녹차 엑기스 추출 제조 공법을 이용해 녹차 비누를 생산하고 있으며 연내에 녹차 앰플·녹차 화장품·샴푸 등을 내놓을 계획이다.

녹차 된장을 만들어 98년 발명 특허를 받은 안효원(58 ·보성군 회천면)씨도 요즘 주문이 밀려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한옥을 새로 짓고 운치를 살리기 위해 항아리를 집안에 가져다 놓은 게 계기가 돼 녹차 된장을 만들었다.녹차 밭 농사보다는 요즘엔 녹차 된장 생산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

安씨는 “빈 항아리에 무엇을 넣을까 고민하다 녹차와 된장이 궁합이 잘 맞다는 식품학과 교수의 말을 듣고 녹차 된장을 연구했다”며 “녹차의 향이 된장 특유의 구린내를 중화시켜 찾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녹차 고추장·녹차 간장까지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또 다른 녹차재배 농민 임대접(50 ·보성군 벌교읍)씨는 녹차 과자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90년 초부터 녹차를 재배한 그는 녹차 소비를 늘리기 위해 녹차 분말로 건빵을 만들어 호응을 얻은데 이어 지난해부터 녹차 강정 ·사탕 등을 만들었다.

林씨는 “녹차 과자는 소화가 잘되는데다 뒷맛마저 개운해 없어서 못팔 정도”라며 “10여명의 직원들이 밤 12시까지 작업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녹차 사료를 쓰는 녹돈(豚)사육도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보성지역 농가들이 98년 ‘보성 녹돈’을 선보이자 비슷한 돼지고기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 것이다.벌교 막걸리 업체는 녹차막걸리를 내놓고 있다.

이처럼 녹차바람이 거세지면서 보성의 녹차재배면적도 95년 2백41㏊에서 지난해는 4백25㏊로 늘었다.

주민 주영순(67)씨는 “예전에는 밀가루를 얻어 먹으면서 차밭을 일구고 씨를 뿌렸다”며 “고생을 함께 한 사람들이 도중에 녹차가 판매되지 않아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거의 모두 떠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朱씨는 최근들어 녹차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광주에서 회사에 다니는 외아들 병석(41)씨를 내려오게 했다.차 밭위 산등성이에 다음달 다원을 열 예정으로 아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젊은이 못지 않은 기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게 다 녹차 때문이다”며 “건강에 관심이 높아질 수록 녹차 소비는 늘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59년 보성 일대에 차밭을 조성하며 설립된 차 제조업체 ㈜대한다업은 요즘같은 경기 침체기에도 올해 매출 신장률이 10%대 이를 것으로 보고있다.

이 회사 공장장 주용노(41)씨는 “매출액이 최근 5년간 두배 늘어 새로운 전기를 맞고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차 밭은 이국적 풍취로 주말에 관광객 1만여명 찾기도 한다.차밭주위로 높이 30m나 자란 삼나무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녹색 차밭이 드넓게 펼쳐져 광고 ·영화촬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지난해 보성군을 찾은 관광객은 2백80여만명.보성군 측은 녹차 잎을 따 올리는 소득(연간 70억원)을 관광 수익이 앞서는 것으로 분석한다.

하승완 보성군수는 “녹차를 보성군의 ‘얼굴상품’으로 가꾸고 있다”며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행정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주민 김현택(53 ·우체국 직원)씨는 “휴가철에는 읍내에서 녹차 밭에 이르는 6㎞ 구간에 관광객 차량들이 밀려 1시간 이상 걸릴 때도 있다”며 “녹차 상품이 각광을 받으면서 보성군 전체가 활기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 녹차는…

전남도 농업기술원 차 시험장 김주희(50)실장은 “녹차는 보약과 마찬가지”라며 “녹차 생산을 늘릴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체계적인 지원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녹차에 들어있는 카테킨 성분은 혈중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고 항암 ·항균 작용을 한다는 것.이 때문에 차는 식품의 산화방지제 ·향균제 ·탈취제 등으로 폭넓게 쓸 수 있다.

녹차 밭에서는 강하고 맑은 기(氣)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건강에 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험장측이 지난해 농가 소득을 조사한 결과 3백평을 기준으로 녹차 농사는 수입이 2백25만원이나 돼 벼(67만원)나 사과(1백65만원)농사를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2백52만원)보다는 낮았지만 투입 노동력과 위험부담 등을 감안하면 차 재배가 훨씬 유리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전남 ·경남 ·제주 지역을 중심으로 대단위로 차를 재배하고 있다.지난해 생산량(1천7백31t)을 지역별로 보면 보성(6백50t)을 비롯,강진(2백15t) ·해남(65t) ·광양(37t) ·영암(35t) ·구례(25t) 등 전남에서 국내 생산량의 60%를 생산했다.

남제주(2백72t) ·서귀포(1백24t),하동(2백50t) ·산청(11t)등에서 많이 생산되고 있다.

보성은 녹차 생산업체가 대규모 밭을 소유한 경우가 많은데 비해 하동 ·구례 등은 일반 재배 농가가 많아 농가당 0.3㏊정도를 가꾸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金실장은 “국산 차는 중국·일본산에 비해 품질이 월등하게 뛰어나고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기계화 확산 등으로 공급 가격을 낮출 경우 소비는 더욱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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