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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독 탔다" 망상···정신질환 수용자도 교도관도 괴롭다

중앙일보

입력

교도소 수감자. [연합뉴스TV]

교도소 수감자. [연합뉴스TV]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범죄 수용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을 관리‧감독하는 환경 역시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교정 기관뿐만 아니라 학계 등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중앙일보는 현장의 목소리와 함께 전문가들의 개선책을 들어봤다.

[정신질환 수용자, 관리 개선 필요하다?] #환청?망상?인권위 진정…사례 빈발 #“시설?인력 확충돼야”한 목소리

“CCTV에서 나오는 레이저가 저를 쏘고 있어요. 밥에 독을 타서 먹을 수가 없어요.”

교도관은 A씨를 타일렀다. A씨가 3주째 먹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 위험에 처할까 어르고 달래는 교도관의 정성에 A씨는 결국 이유를 털어놓았다. ‘레이저’와 ‘독’이 걱정스러웠다는 것이다. A씨는 환청, 망상 질환이 있는 정신질환 범죄수용자다.

문제는 이들 중 다수가 투약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다’고 잡아떼는 경우도 많다. 한 법무부 교정관계자는 “그럴 때마다 강제할 도리도 없어 입만 바싹바싹 마를 뿐”이라고 했다.

‘인권’의 딜레마

치료가 필요한 사람을 구금한 채 보살피는 일은 교도관과 수용자, 양쪽 모두에게 고역이다. 가뜩이나 정신이 ‘아픈’ 수용자인데, 낯설고 제한된 교도소라는 환경까지 오면서 불면증‧적응 장애‧공황발작 등의 증상이 더욱 심각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교도소 자료사진 [중앙포토]

교도소 자료사진 [중앙포토]

정신질환 수용자는 최근 부쩍 늘었다. 2017년 5월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강제 입원 절차를 까다롭게 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나서 즈음이라는 게 이들의 추측이다. 실제로 중증정신질환자의 ‘병원 수용도’가 낮을수록 중증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율은 높아진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도 있다. 지역사회 중심의 관리 및 서비스 체계 구축이 최우선이라는 취지에서다.

시설도, 인력도 부족하다

그렇다 보니 현장의 애환은 깊다. “정신질환 수용자는 물론 우리의 인권도 챙겨달라”는 아우성마저 교정직 공무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다. ‘정신병자’라는 손가락질을 피하려고 투약을 거부하는 사례가 빈번하지만, 교도관들이 이들에게 정신병 진료를 의뢰하거나 적절한 투약 조치를 실시할 ‘명분’은 없다는 토로다.

교정시설 입소한 정신질환자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교정시설 입소한 정신질환자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반면 전문 인력은 ‘인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부족하다. 정신건강의 전문 인력은 의정부교도소1명, 진주교도소 1명, 서울동부구치소 원격의료센터 2명, 전국을 통틀어 단 4명에 불과한 탓이다.

시설도 매한가지다. 정신질환범죄자 전담교도소는 진주(1곳‧혐의가 확정된 기결수만 해당)뿐이다. 10명 안팎의 의료 인력이 있는 공주의 치료감호소(1곳)가 있긴 하지만, 법원에서 별도의 이송지휘를 받아내야 하는 데다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콩나물 수용’ 등 과밀 문제도 지적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대부분의 미결수는 자신이 재판을 받는 관할지와 관련된 교정 시설에 있다. 개별 교도소의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는 결론으로 모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료 인력 달라” 한목소리

범죄자를 격리·치료하는 공주치료감호소 전경. [중앙포토]

범죄자를 격리·치료하는 공주치료감호소 전경. [중앙포토]

현장과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인력’을 짚었다. 박익생 의정부교도소 심리치료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투약 등 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비슷한 수준의 진료가 가능해야 폭력 증상 등을 진정시킬 수 있다”며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교도소 내 치료가 시급하다”고 했다.

법무부는 아예 ‘전문 의료 인력을 직제에 반영해달라’고 호소한다. 전문 지식도 없고 인력도 부족한 교도관들이 정신질환 수용자 관리까지 도맡아야 하는 열악한 실정이니만큼 정신과 의사, 정신 보건 간호사들을 확보해달라는 것이다. ‘중증 정신질환자들은 별도 절차 없이 치료 감호소로 이송하게 해달라’는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도 “교도소에서 증상을 제대로 진단해야 하고 그에 맞춰 투약이나 심리치료 등 전문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수용자들을 가둬놓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교정교화’가 어렵다”며 “재범 방지를 위해서라도 ‘의료교도소’ 등 특수시설을 만들고, 국민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김수민‧나운채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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