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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서 펄펄 나는 ‘제천의 아들’ 임동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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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대한항공 임동혁이 고향 제천에서 열리는 컵대회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대한항공 임동혁이 고향 제천에서 열리는 컵대회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제천의 아들’이 제천에서 훨훨 날아올랐다. 프로배구 대한항공 라이트 공격수 임동혁(21)이 고향에서 열린 2020 코보(KOVO) 컵 대회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코보컵 대회 대한항공 득점 1위 #외국인 선수에 밀려 3년째 벤치 #맹활약으로 다음시즌 기대 키워

대한항공은 22일 개막한 이번 대회에 지난 시즌 득점 1위 안드레아스 비예나(27·스페인) 없이 출전했다. 스페인 국가대표인 비예나는 유럽선수권 예선에 출전하기 위해 아직 입국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공백은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자리를 임동혁이 메웠기 때문이다.

임동혁은 예선 세 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했다. 팀 내 최다인 48득점을 기록했다. 공격 성공률은 53.42%로 준수했다. 큰 키(2m1㎝)를 살린 블로킹도 탁월했다. 센터 블로커를 제치고 블로킹 5위(세트당 0.7개)다. 정지석(45점)·임동혁 쌍포를 앞세운 대한항공은 조별리그 3연승으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임동혁은 이번 대회가 열리는 충북 제천 출신이다. 제천의림초-제천중-제천산업고를 거쳤다. 2018년에 이어 제천에서 두 번째 열린 이번 대회가 누구보다 반갑다. 임동혁은 “고향 친구들로부터 ‘어깨 힘 빼고 잘하라’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임동혁은 고교 때부터 ‘될성부른 떡잎’으로 평가받았다. 큰 키에 운동 신경이 뛰어났다. 당시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박기원 감독은 ‘2020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어린 선수를 대거 대표팀에 뽑았다. 임동혁은 그중 한 명이었다. 16살의 임동혁은 장윤창 경기대 교수(1977년, 만 17세)의 최연소 국가대표(성인대표팀) 기록을 깨뜨렸다.

2017년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임동혁은 한국을 4강(4위)으로 이끌었다. 한국이 이 대회에서 준결승에 진출한 건 1993년(3위) 이후 24년 만이다. 그는 득점 1위에 오르면서 베스트 아포짓 스파이커(라이트)상을 수상했다.

임동혁은 대학 진학 대신 프로 진출을 선택했다. 대한항공이 2017년 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6순위)에서 그를 뽑았다. 대한항공은 고졸 직행 선수 정지석처럼 그를 대형 선수로 키운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프로에서 그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포지션 때문이었다.

라이트는 서브 리시브에 거의 가담하지 않는 대신 공격 비중이 높다. 국내에서는 점프력 좋고 키가 큰 외국인 선수가 도맡는 포지션이다. 임동혁은 밋챠 가스파리니(슬로베니아)와 비예나에 밀려 지난 세 시즌 거의 뛰지 못했다. 간혹 원 포인트 서버로 코트를 밟은 게 대부분이었다. 2018~19시즌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가스파리니를 대신해 활약했지만, 그뿐이었다.

임동혁에게 이번 컵대회는 존재감을 드러낼 좋은 기회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대한항공은 이탈리아 출신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을 영입했다. 산틸리 감독은 “임동혁은 성장 가능성이 있다. 신체 조건과 재능이 탁월하다. 앞으로 기회를 줄 거다. 그는 그것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이번 대회에서는 기량을 100% 펼쳐 보인다. 10월 개막 예정인 2020~21시즌 V리그에서도 뭔가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비예나는 입국 후 자가격리를 거쳐야 하고 몸도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 임동혁 자신도 이런 점을 잘 안다. 그는 “올 시즌이 내게 행운이고 기회다. 일단 이번 대회부터 기복 없이 마치겠다”라고 말했다.

임동혁의 성장은 대표팀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국내 라이트는 외국인 선수에 밀려 소속팀에서조차 살아남기 쉽지 않다. 대표팀에서 뛸 만한 선수가 급감하는 추세다. 지난해 도쿄올림픽 아시아 예선에도 35세 베테랑 박철우(한국전력)가 주전으로 뛰었다. 지난해 V리그 최우수선수(MVP) 나경복(26·우리카드)과 함께 임동혁이 이제 박철우를 대신해야 한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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