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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투자금 100% 반환'…라임 판매사 4곳 모두 권고수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권고한 라임 무역금융펀드 계약취소 및 전액 보상안을 판매사들이 27일 전부 받아들였다. 판매사들은 2018년 11월 이후 무역금융펀드에 가입한 나머지 투자자들에 대해서도 자율조정을 거쳐 순차적인 투자금 반환 절차에 나설 전망이다.

각종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지난 6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사모펀드 책임 금융사 강력 징계 및 계약취소(100% 배상)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각종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지난 6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사모펀드 책임 금융사 강력 징계 및 계약취소(100% 배상)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한 날 이사회 연 판매사들 "100% 반환하겠다" 

27일 금융감독원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하나은행·신한금융투자·미래에셋대우는 이날 오후 일제히 이사회를 열고 라임 무역금융펀드 투자금 전액을 반환하라는 금감원 분조위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금감원은 지난 6월 30일 분조위를 열고 2018년 11월 이후 이들 판매사를 통해 판매된 라임 무역금융펀드에 대해 민법상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결정했다. 판매사들엔 투자자에게 투자금 전액을 반환해주라고 권고했다. 반환 대상 펀드 판매액은 우리은행 650억원, 신한금융투자 425억원, 하나은행 364억원, 미래에셋대우 91억원에 신영증권 81억원 등을 더해 총 1611억원이다. 이중 신영증권을 제외한 4곳이 분쟁조정 대상이었다.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뉴스1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뉴스1

이날 가장 먼저 권고안 수락 사실을 알려온 우리은행 측은 "법률검토 등을 면밀히 진행한 결과 라임 무역금융펀드 전액반환 권고안이 소비자 보호와 신뢰회복 차원 및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하나은행과 미래에셋대우 역시 "분조위 권고안을 수용하기로 했다"며 "자산운용사인 라임자산운용과 PBS증권사인 신한금융투자를 대상으로 구상권 및 손해배상청구 등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한금투 "일부 사실 수용할 수 없지만…수락 결정" 

금감원의 분쟁조정안에 따르면 신한금융투자는 판매사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역금융펀드에 총수익스와프(TRS)를 제공한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증권사로서 사실상 라임자사운용과 한 몸처럼 사기성 의사결정을 해온 '공범자'의 성격이 있다. 때문에 분조위 권고안을 수락하는 것이 결국 스스로의 공범성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 다른 판매사들의 구상권 청구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입장이었다. 신한금융투자 이사회 이날 가장 늦은 시간까지 격론을 벌였으나 결국 권고안을 수락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신한금융투자 측은 "분쟁조정 결정에서 인정한 착오취소에 대해 법리적으로 이견이 있으며, 분쟁조정결정의 수락이 자본시장에 미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며 "조정결정문에서 PBS본부와 관련해 인정한 일부 사실 등은 수용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급된 보상금 차액을 정산하기로 한 고객과의 약속을 이행하고, 관련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수락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시한 미뤄준 금감원 "추가 연장은 없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연합뉴스

분조위 권고는 신청인(투자자)과 금융회사 등 양 당사자가 조정안을 접수한 뒤 20일 이내 조정안을 수락하면 효력을 갖는다. 당초 권고 수락 시한은 지난달 27일이었다. 하지만 판매사들은 이때까지 결론을 내지 못했고 금감원에 수락 시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운용사와 판매사의 과실 비율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금 100%를 반환해주는 것이 법적으로 타당하냐는 이유에서였다. 금감원은 판매사의 수락 시한 연장 요청을 받아들여 한 달의 기간을 더 부여했다.

이를 두고 무역금융펀드 분조가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분조의 전철을 따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키코 분조 당시 신한은행·하나은행·대구은행 등이 5차례에 시한 연장을 요청한 끝에 결국엔 금감원에 권고안 불수용 방침을 통보한 바 있어서다. 그러나 금감원은 무역금융펀드 수락 시한을 연장해주면서 투자자 보호 등을 이유로 '추가 시한 연장은 없다'고 못 박아 이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윤석헌 "분조 수락 여부, 평가에 반영" 압박 나서 

윤석헌 금감원장. 연합뉴스

윤석헌 금감원장. 연합뉴스

금감원은 대신 윤석헌 금감원장의 발언을 통해 판매사들에 대한 수락 압박에 나섰다. 윤 원장은 지난 25일 임원회의를 열고 "금융회사에 대한 각종 평가 때 분조위 조정결정 수락 등 소비자보호 노력이 더욱 중요하게 고려될 수 있도록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판매사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다.

윤 원장은 "라임 무역금융펀드 판매사들이 금번 조정안을 수락함으로써 고객 및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발언하는가 하면 "만약 피해구제를 등한시해 신뢰를 상실하면 금융회사 경영의 토대가 위태로울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압박하기도 했다.

윤 원장은 그보다 앞선 지난 11일에도 임원회의를 통해 "편면적 구속력 등 분쟁조정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편면적 구속력이란 금융당국의 분쟁조정안을 금융소비자가 수락할 경우 금융회사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무조건 따라야하는 제도를 말한다.

사상 첫 '100% 반환' 효력 발휘…1611억 자율조정 실시

이들 판매사가 이날 분조위 권고를 수락하기로 결정하면서 사상 첫 '투자금 100% 반환' 권고가 현실화됐다. 윤석헌 원장의 압박이 효력을 발휘한 것이기도 하다. 이제 2018년 11월 이후 무역금융펀드에 가입한 나머지 투자자들에 대해서도 분조위 권고안을 토대로 한 자율조정이 순차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권고의 직접적인 대상에서 빠진 신영증권 역시 권고안에 근거해 자율조정을 실시하게 된다. 분조위를 거친 조정은 재판상 화해로 인정받는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금감원이 원장의 임원회의 발언을 연달아 공개하면서까지 판매사들에게 분쟁조정 결과를 수락하라고 압력을 넣은 적은 처음"이라며 "감독당국이 작정하고 불수용 때 불이익을 주겠다고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판매사들도 법리만을 앞세우거나 회사 입장만 생각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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