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점을 가진 여자가 아름답다

중앙일보

입력

먼저 이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해준 세월과 그 친구의 이해에 감사한다.

대학 시절, 절친한 후배에 관한 일이다.

그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어딘가에 나옴직한, 준수한 용모와 맑은 품성을 지닌 청년이었다. 차분하고 조용했던 그가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연애 사건이었다.

후배는 장안에 손꼽히는 세도가의 둘째 아들이었는데 그가 사귀는 아가씨는 같은 명문대학에 다닌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다지 내세울 게 없는 듯 했다. 대단한 미인도 아니고 가문의 세력이나 부유함에 있어서도 후배 쪽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그저 보통 수준이라고 해도 어울리기 힘든 사이였는데 오히려 평범하지 않은 부분까지 있었다.

여자는 소아마비 환자로 다리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런 아가씨와 사귄다는 이유로 남자 집이 발칵 뒤집힌 것은 물론이고 후배는 친구들 사이에서조차 정신나간 놈 취급을 받았다. 통속적이고 뻔한 결론을 예상하겠지만 가슴 아픈 이야기이므로 그 이후 일에 관해서는 여기서 접도록 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후배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하고많은 여자 중에 왜 하필 그 여자인지, 그 여자의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빠져 있었는지를. 후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형, 눈에 보이는 결점을 가진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결점을 가진 사람보다 더 선한 법이야."

그리고 다시 한마디를 덧붙였다.

"모든 사람이 다 아는 결점은 더 이상 결점이 아냐. 그 애의 결함은 만인이 다 아는 단 한가지였고 그건 내가 감싸줄 수 있는 부분이었어.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수만 가지의 우리들의 결함은 고치기가 훨씬 힘들지."

그 말이 준 뭉클한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녀석은 그때 이미 알고 있었던 게다. 사람을 정말로 피폐시키는 괴력은 마음의 기형이지 외모의 기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에서야 깨닫고 있다.
우리가 무서워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결점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이 결점인지도 모르고 뻐기는 오만한 상태가 아닐까.

성형외과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외모 중 어딘가가 못마땅해서 그것을 고치려고 찾아온다. 수북하게 부은 듯한 눈, 미간이 푹 꺼진 코... 그네들의 불만을 수술을 통해 교정해 줄 수 있을 때는 의사로서의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어떤 의사도 도저히 고칠 수 없을 것 않은 결함을 지진 사람들도 때때로 만난다. 바로 뒤틀린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지독한 이기심, 유아독존의 자만심,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허영심, 비굴함 이상의 자기 비하 등...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해도 이런 꼬인 마음들을 치유할 만한 처방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결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감당 못할 만큼 많은 결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거만한 태도 하나만 고쳐도 많은 결점이 저절로 고쳐진다.

가끔 어떤 여자가 아름다우냐고 묻는 인터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겸손한 여자가 가장 예쁘다고 답한다.

겸손한 여자는 결점이 있는 여자이다. 세상에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만은 내 말은 자신에게 결점이 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부족한 부분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름답다라는 뜻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완벽한 여자를 싫어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존재하지도 않겠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여자에게는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아 부담스럽다. 사람들이 백치미가 흐르는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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