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료시대 현장을 가다] 어린이 만성신부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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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투석과 신장이식으로 이어지는 만성신부전(腎不全)은 어른들만의 병일까.

물론 어린이 만성신부전은 국내에서 30만명당 한명꼴로 나타날 정도로 흔한 병은 아니다. 하지만 증상이 모호해 말기신부전으로 진행돼서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아 평생 고통 속에 지내거나 사망하는 천형(天刑)과도 같은 질환이다. 신장은 90% 정도 망가져야 눈에 띄는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

서울대 의대 소아신장학 하일수 교수는 "1990년부터 10년 동안 43개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만성신부전 환자가 4백1명이었으며, 몇 년간 투석을 하다가 결국 신장이식수술을 받은 어린이만도 1백59명에 이른다" 고 밝혔다.

만성신부전 환자는 초기에 성장이 늦는 것 말고는 눈에 띄는 증상이 없다가 말기신부전으로 요독증이 나타난 뒤에야 발견된다.

요독증이란 신장에서 노폐물을 걸러내지 못해 나타나는 증상. 쉬 피로하면서 낮잠을 오래 자거나 식욕부진.구토.식욕감퇴가 오고, 때론 생각과 행동이 둔해져 성적이 떨어지고 주변에 관심이 없어지기도 한다. 이 상태가 되면 투석을 받아야 한다.

일단 만성신부전으로 진단되면 우선 음식조절부터 해야 한다. 당분과 지방은 마음대로 먹어도 되지만 단백질은 달걀.생선.저(低)인산 우유.고기 등을 알맞게 먹어야 한다. 마시는 물이나 염분도 담당의사가 지시한 양에 따라야 한다.

비타민B와 C는 복용하는 게 좋다. 만성신부전 환자에게 동반되는 빈혈.고혈압 치료는 물론 필요하면 성장호르몬 치료도 받아야 한다.

식이요법이나 약물치료를 해도 병이 말기신부전으로 진행해 결국 영양부족과 함께 요독증으로 정기적인 투석을 받게 된다.

투석은 크게 인공신장기를 돌리는 혈액투석과 복막(내장을 덮고 있는 막)에 투석액을 넣어 혈액 내 노폐물과 과량의 수분을 제거하는 복막투석(그림 참조)으로 나뉜다.

하교수는 "복막투석은 식사를 어느 정도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어 성장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데다 혈액투석보다 가격도 싸고 투석법을 2주 정도 배우면 누구나 집에서 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어린이 환자는 복막투석을 많이 권한다" 고 설명했다.

또한 혈액투석은 몇 시간 동안 시행되기 때문에 환자가 투석 중이나 투석 후에 두통.구토.무력감.저혈압 등을 호소한다. 그러나 복막투석은 투석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므로 이런 증상이 없는 것도 장점이다.

최근엔 밤에 자는 동안 자동으로 투석액을 교체해주는 자동복막투석도 개발됐다.

이처럼 투석을 해도 망가진 신장 기능을 대체할 수 없을 땐 신장이식을 한다. 국내 통계에 따르면 투석 후 신장이식을 받을 때까지 기간은 평균 3.1년이다.

만성신부전은 이런 여러 가지 치료법을 동원해도 단지 나빠지는 속도를 서서히 늦출 뿐 망가진 신장을 정상으로 만드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조기발견.조기치료로 만성신부전까지 진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장이 나빠지면 성장이 늦어 몸무게가 늘지 않고, 손톱.머리카락 등도 잘 자라지 않으므로 우선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선 어린이 만성신부전의 가장 흔한 원인 질환이 방광에서 요도로 소변이 거꾸로 흘러들어가는 방광-요관 역류다.

이런 어린이의 특징은 요로감염이 잘 생긴다는 점.

보라매병원 소아과 박혜원 박사는 "기침.콧물 등 다른 감기증상 없이 열만 날 땐 열감기라고 지나치지 말고 소변검사를 받아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또 초등학교 때부터는 매년 간단한 소변검사를 해서 신장의 이상 여부를 조기에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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