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백원우·박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함께 기소된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재판. 14일 속행된 공판에는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이 평소 '선배님'이라 불렀던 김용범 기재부 1차관(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여권 총선 출마설이 보도됐던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현장에서
피고인과 증인 모두 친(親) 여권 인사라 김 빠진 재판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이날 법정에선 유재수 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의 사표 처리를 두고 오전부터 피고인과 증인들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靑과 금융위의 폭탄돌리기
첫번째 증인인 김 차관은 "백원우 전 비서관에게 유재수 사표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표를 받으라고 했다"는 백 전 비서관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 거다.
오후에 출석한 최 전 위원장도 "청와대가 유재수 비위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역시 "금융위에 '비위혐의를 통보하라'고 지시했다"는 조국 전 장관의 주장을 부인하는 내용이다.
유 전 국장의 사표 처리 여부를 두고 피고인과 증인 사이의 '폭탄 돌리기'가 시작됐다. 법조계에선 "문재인 정부가 집권 4년차에 접어들었음를 실감한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감찰받은 유재수, 명퇴금만 1억 4000만원
유 전 국장은 2017년 청와대 감찰을 받았지만 징계 없이 명예퇴직금 1억 4000여만원을 받고 금융위를 떠났다. 직후 민주당 수석전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엔 부산시 경제부시장까지 지냈다.
청와대 감찰 대상이 된 일반 공무원은 상상할 수 없는 경로다. 이후 감찰무마 의혹이 불거지며 구속돼 지난 5월 4200여만원의 뇌물수수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현재 항소한 상태다. 당시 그의 감찰을 중단(조 전 장관은 종결이라 주장)한 것이 청와대고 명예퇴직을 받아준 곳은 최 전 위원장과 김 차관이 몸담았던 금융위다.
하지만 법정에서 양측은 '유재수 사태'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렸다. 조 전 장관을 포함한 피고인들은 "감찰을 할만큼 했다""금융위에 추가 조치를 부탁했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잘못은 벌어졌지만 잘못한 사람은 없는 촌극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33년 공직에 있었지만 靑은 무서운 곳"
유 전 국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 중단 뒤 백 전 비서관은 김 차관에게 "유재수 의혹 대부분이 클리어됐다. 일부는 해소가 안됐다. 인사에 참고하라"고 전했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통보였다. 공문은 없었고 구두로만 통보됐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다고 금융위에 속했던 두 증인이 무엇이 해소가 안됐는지, 그래서 유 전 국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김 차관은 검사가 "그 내용을 왜 묻지 않았냐"고 묻자 '무서운 청와대' 논리를 끌어들였다. 그는 "제가 공직 생활을 33년간 했고 차관이지만 청와대는 뭘 쉽게 묻거나 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고 말했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최 전 위원장과 김 차관 모두 유 전 국장이 여권 핵심 인사들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최 전 위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유재수를 금융정책국장에 앉히지 않았으면 청와대에서 시키라고 연락이 왔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유 전 국장과 같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다.
유재수 사태, 원칙 지킨 사람 없었다
조 전 장관과 백 전 비서관의 변호인이 두 증인에게 "왜 청와대에 비위 내용을 물어보지 않았느냐""백 전 비서관은 금융위 유재수 감찰에 관여할 권한이 없지 않느냐"고 캐물었다. 피고인의 책임을 덜며 두 증인의 잘못도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의 1차 책임은 물론 청와대에 있다. 감찰 대상이던 유 전 국장이 병가를 내고 잠적했을 때 수사기관 고발이란 정식 절차를 거쳤다면 이날 재판은 없었을 거다. 청와대가 금융위에 비위 내용을 구체적으로 통보하고 감찰을 지시했어도 괜찮았다. 김 차관과 최 전 위원장이 '무서운 청와대'의 지시를 거부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감찰 대상자였던 유 전 국장의 명예퇴직을 아무 조건 없이 받아준 김 차관과 최 전 위원장의 '청와대 탓하기'는 다소 낯뜨겁다. 남 탓만 하기엔 두 사람이 짊어졌던 공직의 자리가 무겁다. 지청장 출신 변호사는 "유재수 사태에서 원칙을 지킨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