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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수사건' 폭탄 돌리기인가···靑·금융위 낯뜨거운 네탓 공방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유재수 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유재수 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의 모습.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백원우·박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함께 기소된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재판. 14일 속행된 공판에는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이 평소 '선배님'이라 불렀던 김용범 기재부 1차관(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여권 총선 출마설이 보도됐던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현장에서

피고인과 증인 모두 친(親) 여권 인사라 김 빠진 재판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이날 법정에선 유재수 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의 사표 처리를 두고 오전부터 피고인과 증인들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靑과 금융위의 폭탄돌리기

첫번째 증인인 김 차관은 "백원우 전 비서관에게 유재수 사표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표를 받으라고 했다"는 백 전 비서관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 거다.

지난해 8월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왼쪽)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확대관계장관회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던 모습. [뉴스1]

지난해 8월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왼쪽)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확대관계장관회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던 모습. [뉴스1]

오후에 출석한 최 전 위원장도 "청와대가 유재수 비위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역시 "금융위에 '비위혐의를 통보하라'고 지시했다"는 조국 전 장관의 주장을 부인하는 내용이다.

유 전 국장의 사표 처리 여부를 두고 피고인과 증인 사이의 '폭탄 돌리기'가 시작됐다. 법조계에선 "문재인 정부가 집권 4년차에 접어들었음를 실감한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감찰받은 유재수, 명퇴금만 1억 4000만원  

유 전 국장은 2017년 청와대 감찰을 받았지만 징계 없이 명예퇴직금 1억 4000여만원을 받고 금융위를 떠났다. 직후 민주당 수석전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엔 부산시 경제부시장까지 지냈다.

백원우 민주연구원장 직무대행이 지난 6월 여의도 국회에서 민주연구원 주최로 열린 슬기로운 의원생활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원우 민주연구원장 직무대행이 지난 6월 여의도 국회에서 민주연구원 주최로 열린 슬기로운 의원생활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감찰 대상이 된 일반 공무원은 상상할 수 없는 경로다. 이후 감찰무마 의혹이 불거지며 구속돼 지난 5월 4200여만원의 뇌물수수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현재 항소한 상태다. 당시 그의 감찰을 중단(조 전 장관은 종결이라 주장)한 것이 청와대고 명예퇴직을 받아준 곳은 최 전 위원장과 김 차관이 몸담았던 금융위다.

하지만 법정에서 양측은 '유재수 사태'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렸다. 조 전 장관을 포함한 피고인들은 "감찰을 할만큼 했다""금융위에 추가 조치를 부탁했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잘못은 벌어졌지만 잘못한 사람은 없는 촌극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지난 7월 국회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한민국 대전환과 사회적 경제 정책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지난 7월 국회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한민국 대전환과 사회적 경제 정책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33년 공직에 있었지만 靑은 무서운 곳"

유 전 국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 중단 뒤 백 전 비서관은 김 차관에게 "유재수 의혹 대부분이 클리어됐다. 일부는 해소가 안됐다. 인사에 참고하라"고 전했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통보였다. 공문은 없었고 구두로만 통보됐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다고 금융위에 속했던 두 증인이 무엇이 해소가 안됐는지, 그래서 유 전 국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김 차관은 검사가 "그 내용을 왜 묻지 않았냐"고 묻자 '무서운 청와대' 논리를 끌어들였다. 그는 "제가 공직 생활을 33년간 했고 차관이지만 청와대는 뭘 쉽게 묻거나 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고 말했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최 전 위원장과 김 차관 모두 유 전 국장이 여권 핵심 인사들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최 전 위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유재수를 금융정책국장에 앉히지 않았으면 청와대에서 시키라고 연락이 왔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유 전 국장과 같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재판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재판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재수 사태, 원칙 지킨 사람 없었다

조 전 장관과 백 전 비서관의 변호인이 두 증인에게 "왜 청와대에 비위 내용을 물어보지 않았느냐""백 전 비서관은 금융위 유재수 감찰에 관여할 권한이 없지 않느냐"고 캐물었다. 피고인의 책임을 덜며 두 증인의 잘못도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의 1차 책임은 물론 청와대에 있다. 감찰 대상이던 유 전 국장이 병가를 내고 잠적했을 때 수사기관 고발이란 정식 절차를 거쳤다면 이날 재판은 없었을 거다. 청와대가 금융위에 비위 내용을 구체적으로 통보하고 감찰을 지시했어도 괜찮았다. 김 차관과 최 전 위원장이 '무서운 청와대'의 지시를 거부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감찰 대상자였던 유 전 국장의 명예퇴직을 아무 조건 없이 받아준 김 차관과 최 전 위원장의 '청와대 탓하기'는 다소 낯뜨겁다. 남 탓만 하기엔 두 사람이 짊어졌던 공직의 자리가 무겁다. 지청장 출신 변호사는 "유재수 사태에서 원칙을 지킨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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