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프리즘] 김봉곤 사태 이후 남는 것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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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8호 31면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사건’이라기보다는 ‘사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발단에서 전개·결론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뭔가 숨 돌릴 틈도 없이 신속하게 전개됐다는 점에서다. 그만큼 소설가 김봉곤씨의 카톡 대화 무단 인용에 대한, 적어도 트위터상에 나타난 ‘민심’의 분노는 거세 보였고, 그래서였겠지만 관련 출판사들의 대응은 전격적이었다. 예상보다 빠른 출판사들의 김봉곤 소설 환불·판매 금지 조치가 더 큰 불똥을 피하기 위한 김봉곤 손절매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무단 도용 명백한 잘못이지만 #문학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길

사태 이전까지 김봉곤은 유망한 젊은 소설가 중 하나였다. 스스로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공개한 첫 소설가였고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삶을 과감하게 소설 재료로 삼아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남성 작가가 쓴 남성 동성애 서사인데도 2030 여성 독자들의 선택을 받으며 소설책 판매가 남달랐다.

그랬던 김봉곤인데, 카톡 대화 무단 인용 문제가 불거진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현재, 서점에서 그의 소설책을 구할 길은 없다. 이런 낙폭(落幅)에 대해 문단 안팎에서는 “참담하다” “무섭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그의 죄가 가볍다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가 된 김봉곤의 단편 ‘그런 생활’에 들어 있는 피해 여성의 사생활과 관련된 카톡 대화는 소설책에 형상화된 것처럼 시시콜콜 일상을 공유하고 섹스에 관한 조언도 서슴없이 나누는 친구이자 선배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본인의 의사에 반해, 그것도 활자화라는 방식으로 만천하에 드러나서는 안 되는 내용이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사생활 침해보다 고통의 강도가 강했으리라 여겨진다. 트위터상에 나타난, 김봉곤과 피해 여성 간의 공방을 살펴보면 김봉곤 입장에서 억울하겠다 싶은 대목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체로 그의 처신을 문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김봉곤의 그런 처신에, 관련된 두 출판사 창비와 문학동네의 방조 내지는 일정한 개입이 과연 없었겠느냐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출판사들도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문학계 일부에는, 이 땅에서 성소수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을 당사자가 작품화했다는 점만으로 그동안 지나치게 높게 평가했던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제 작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봉곤 말이다. 이제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작품활동을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기자가 읽고 만나본 김봉곤은 적어도 위선과 야망으로 뒤틀린 인간은 아니었다. 그렇게 믿고 싶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의 잘못이 작다는 게 아니라 적어도 김봉곤의 경우 정상참작해줄 구석은 있어 보인다.

소설의 어쩔 수 없는 자전적 속성 말이다. “소설가는 고향에 가지 못한다.” 결국 자신과 가족을 팔아먹는 존재이기 때문이란다. 문단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얘기다. 자기 얘기, 주변 얘기 아니면 어떤 얘기를 쓴단 말인가. 우리는 숱한 아름다운, 자전적인 소설들을 읽으며 지내 왔다. 이청준의 소설이 그렇고 황석영의 소설이 그렇다. 젊은 작가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 문제가 되는 것은 인용에 있어서 윤리의 문제, 넓게는 재현의 윤리 문제일 것이다. 김봉곤의 경우 ‘자전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실과 픽션의 경계를 극단적으로 뒤섞는 오토픽션(auto fiction)을 추구했다. 2018년 소설집 『여름, 스피드』에 실린 등단 중편 ‘Auto’에는 어떤 경우라도 소설 소재를 가공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래서 가능하다면 더욱 마음에 드는 소재를 찾으려는 속내를 비친 대목이 있다.

적어도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당사자가 쓰는 퀴어 문학을 매도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풍성함을 애써 고사시킬 필요가 있을까.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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