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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의 노예’로 전락한 공유경제 노동자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98호 20면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알렉산드리아 J. 래브넬 지음
김고명 옮김
롤러코스터

우버 주 6일 일하고 400달러 벌어 #숙박업자는 고객 성희롱 감수 #플랫폼 노동자 80명 환경 분석 #“기업 책무 회피에 적합한 모델”

공유경제, 플랫폼경제, 긱경제…

디지털 기술이 전개하는 새로운 경제 방식의 용어는 스마트하고 신선하다.

‘노동자들이 남의 밑에 고용돼 이래라저래라 소리를 듣지 않고, 스마트폰 앱 네트워킹을 통해 스스로 자기 노동의 방식을 결정하며, 디지털 노마드로 살면서도 돈을 버는 이상적 노동시장’. 그 뒤에 따라붙는 설명과 수식어들도 유쾌하고 희망적이다. 요즘 젊은이들 말로 ‘힙섹’한 노동 생활이 열리는 유토피아적 삶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그러다 이런 최첨단 산업에 누군가 사회적 의문을 제기하면, 경영계 최고위층 인사들은 “미래를 포기하는 구태의연한 발상”이라고 격분한다. 규제조항이라도 만지작거리면, “발전과 번영의 길로 나가지 못하는 퇴행적인 나라에선 기업을 할 수 없다. 외국으로 떠나야 할 것 같다”는 한탄의 언사도 늘어놓는다. ‘규제를 없애야 나라가 산다’며 경영인들은 ‘충정’의 목소리를 높인다.

첨단이라 불리는 새로운 기술과 용어가 만나면 대중들은 금세 매혹된다. 그런 한편으론 잘 모르는 ‘첨단’에 사람들은 쉽게 주눅 들기도 하고, 동조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스마트경제는 미래 사회의 번영과 발전의 토대가 될 거라는 ‘스마트’한 믿음 아래 굳건히 성장했다.

공유경제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우버’의 기사들이 차량 렌트 비용과 플랫폼 요구에 얽매이는 노동 과잉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EPA=연합뉴스]

공유경제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우버’의 기사들이 차량 렌트 비용과 플랫폼 요구에 얽매이는 노동 과잉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EPA=연합뉴스]

그런데 “그렇다면 번영과 발전의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질문을 바꿔본다. 한 예로 ‘배달의 민족’ 플랫폼은 6조원대에 팔렸다. 그렇다면 배민의 라이더들은 얼마나 부자가 됐을까. 굳이 금전적 이익이 아니더라도, 스마트폰과 오토바이 한 대로 정말 노동의 자유를 만끽하는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있는가. 공유경제와 플랫폼경제는 정말 노동자에게 유토피아적인 삶의 질을 보장해주는 경제모델인가.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는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저자는 사회학자의 눈으로 공유경제 노동자의 삶을 포커싱해 들어간다. 언론인이나 경영학 교수들이 주로 쓰는 공유경제의 산업 가치와 경영적 관점이 아니라 ‘공유경제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이 그의 주제다. 그는 숙박서비스 에어비앤비, 교통수단 우버, 단기 알바 태스크래빗, 출장요리 키친서핑 등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공유경제 플랫폼을 통해 일을 하는 노동자 80명을 인터뷰했다.

우버 기사로 일하는 바란은 우버가 인증하는 렌터카 회사에 주당 400달러를 내고 차를 빌려 일을 한다. 하루 12시간씩 일해서 버는 돈은 한 주에 800달러 정도. 사흘간 일한 돈은 렌트 비용을 내고, 사흘 일해 자신이 써야 한다. 이 때문에 주 7일을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업체는 점차 렌트비가 비싼 차량 쪽으로 유도한다. 더 벌어도 노동자가 가져갈 몫은 언제나 제자리일 수밖에 없다. 숙박업자도 단기 아르바이트도 모두 소비자가 평가로 주는 별 숫자에 목을 맨다. 소비자가 별을 적게 줄까 봐 노예처럼 봉사하고, 모욕과 성희롱까지 감수하고, 다쳐도 웃는 얼굴을 해야 한다. 일하다 다쳐도 모두 자기 부담이다.

“지금의 상황은 이미 100년도 더 전에 금지된 고용 노예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저자는 이미 앱 기반 경제에서 노동자의 지위는 ‘산업혁명 초기’로 회귀했다고 못 박는다. 생산량을 기준으로 임금을 받고, 산업안전이란 개념조차 없었으며, 산업재해도 보상받지 못했던, 그 시대 말이다.

“자율적 노동은 허상이다.” 공유경제의 근로자들이 얼마나 빨리 일을 수락하고 응답하는지, 별 몇 개를 받는지에 따라 평가되는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저자의 지적이다. 공유경제에 대한 경영계 찬사와 환호는 “기업이 산재보험 제공, 잔업수당 지급, 장애인 편의 보장 등 사회적 책무를 피하는 데에 적합한 모델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저자는 지난 200여년간 노동운동을 통해 조금씩 진전시켰던 사회적 안전망, 직업의 안정성, 임금상승 등 노동자들의 노동 가치의 상승 노력이 무력화되고, 근로자는 방패 없이 직장이 아니라 노동 자체에 더 강하게 매이는 현상, 그리고 플랫폼만이 승리하는 공유경제 게임의 방식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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