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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 두기? 나와의 거리는 더 가까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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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8호 19면

코로나 시대, 젊은 작가전

고상우의 ‘블랙 펄’(2020). [사진 사비나미술관]

고상우의 ‘블랙 펄’(2020). [사진 사비나미술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이 돼버린 코로나 시대에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런 상황을 나 자신을, 나를 형성하고 있는 것들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사비나미술관 ‘나 자신의 노래’ #‘내 안의 나’ 찾는 13인 작가전 #회화·사진·조각·VR 등 다양 #“코로나 시대를 성찰의 계기로”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이 2020여름특별전 ‘나 자신의 노래’(7월 29일~9월 19일)를 기획한 의도다. 전시 제목은 19세기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의 연작시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에서 따왔다. 자아를 형성하는 것들의 다양한 관계성을 탐구한 대시인의 시구처럼, 13명의 작가는 자기 자신을 요모조모 뜯어본 이야기를 관람객들에게 들려준다.

전시의 첫 번째 테마는 ‘타자로서 자기 자신-나를 이해하기 위해 너를 이해한다’다. 미국 사회학자 조지 허버트 미드의 자아론, 즉 “완전한 자아는 ‘주체로서의 나(I)’와 ‘객체로서의 나(me)’의 조화로 이루어진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김나리의 ‘먼 곳으로2’(2018). [사진 사비나미술관]

김나리의 ‘먼 곳으로2’(2018). [사진 사비나미술관]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김나리 작가가 만든 조각상들이 시선을 붙든다. 해골을 감싸 안은 소녀나 수리부엉이가 머리에 붙어있는 듯한 여인의 모습은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대중가요 노랫말을 떠올리게 한다. 김 작가는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는 고통과 상처, 슬픔이 품고 있는 어떤 보석 같은 것을 끄집어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 옆에 있는 커다란 사슴 얼굴은 고상우 작가의 ‘블랙 펄(Black Pearl)’ 연작이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생명체는 생명과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졌다는 생명권 평등주의를 담았다. 사슴을 찍은 사진을 확대해 컴퓨터로 일일이 색깔을 다르게 입혀 푸른 사슴을 만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미국과 유럽과 한국에서 총 10주간 격리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나는 우주 속에서 태어나 동식물과 함께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원성원의 ‘일곱 살-늦잠’(2010). [사진 사비나미술관]

원성원의 ‘일곱 살-늦잠’(2010). [사진 사비나미술관]

영국에서 활동하는 배찬효 작가는 서양사회 속 동양 남자에 대한 편견을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의 한 장면으로, 역사 속 한 장면으로 구현하고 있다. 서양 여성복장에 화장을 한 동양 남성의 천연덕스러운 포즈와 표정은 자아정체성과 사회적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다.

조세민의 ‘오늘의 춤사위’(2017). [사진 사비나미술관]

조세민의 ‘오늘의 춤사위’(2017). [사진 사비나미술관]

지요상 작가의 ‘적요(寂寥)-물 위의 무위(無爲) 3’은 현실의 속도에서 슬쩍 비켜나 조용히 자신을 관조하는 모습을 화선지 위에 수묵으로 그려냈다. 작가의 섬세한 붓질은 작업을 하면서 던졌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횟수와 동일해 보인다.

‘미러 마스크(Mirror Mask)’는 거울로 인간의 얼굴을 형상화한 한승구 작가의 설치 작품이다. 작가는 “자아를 상징하는 얼굴을 거울 가면으로 가리고 그 뒤에 숨어서 타인이 거울에 반사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관람자의 시선으로 관찰한다”고 말한다. 센서가 설치돼 있어 사람이 다가가면 컬러 패널이 거울로 바뀐다.

서로 전혀 모르지만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만 골라 사진을 찍는 프랑수아 브뤼넬의 ‘Daniel Krüger - Aurelia Kanetzky’(2013). [사진 사비나미술관]

서로 전혀 모르지만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만 골라 사진을 찍는 프랑수아 브뤼넬의 ‘Daniel Krüger - Aurelia Kanetzky’(2013). [사진 사비나미술관]

두 번째 테마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에서 김현주 작가는 ‘내 몸 안에 들어온 디지털’이라는 컨셉트를 싱글채널 영상으로 선보인다. 나의 정체성이 이진법의 디지털 코드로 시시각각 변모되는 화면은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지게 만든다. 또 중국과 일본에 거주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는 조세민 작가는 사이버 공간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가상적’이고 ‘네트워크’화 된 자아가 겪는 모습을 보여준다. “VR가상체험을 통해 생물학적 몸과 디지털 몸의 차이를 느껴보시라”는 것이 작가의 기획의도다.

유일한 외국인인 캐나다 사진작가 프랑수아 브뤼넬은 1999년부터 20년이 넘게 ‘아임 낫 어 룩 어라이크(I’m not a look alike)’ 연작을 해오고 있다.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났고 혈연관계도 전혀 없지만 마치 쌍둥이처럼 닮은 사람들을 찾아내 비슷한 복장을 입히고 흑백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서로 누구인지 모르고, 만난 적도 없으며,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살고 있던 250쌍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강재현 학예실장은 “세계 어딘가에 나와 닮은 ‘도플갱어’가 일곱 명 이상 있다고 하는데, 작가는 나와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을 찾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형모 전문기자/중앙 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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