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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의료인을 버티게 하는 힘은 국민의 응원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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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홍준 서울시의사회 회장·대한의사협회 부회장

박홍준 서울시의사회 회장·대한의사협회 부회장

국내에 코로나19가 상륙한 지 6개월이 훌쩍 지났다. 하루하루 긴장의 연속이었던 만큼 지나간 시간이 찰나처럼 느껴진다. 눈 뜨면 깰 수 있는 꿈이라면 좋으련만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은 눈을 부릅뜨고 싸워 이겨내야 할 엄연한 현실이다.

코로나 장기화로 의료진들 탈진 #2차 대유행 전에 에너지 충전해야

이렇다 할 치료제나 백신도 없는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야 하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한 사람의 의료인으로서 한계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확진 판정을 받고 외롭게 격리 생활을 해야 했던 환자들, 여전히 병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환자들, 무엇보다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고인과 유족들은 우리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의료인들은 이제 육체적·정신적으로 ‘번아웃(탈진)’하고 있다. 사태 초기에 정부와 의료계의 지시 사항을 경청하고 협조하면서 방역의 한 축을 담당했던 국민도 점차 긴장이 풀어지는 모습이다.

물론 누구든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한결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감기 환자가 증가하는 가을철이 되면 또다시 혼란이 찾아올 것으로 우려한다. 대비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가 소속된 서울특별시의사회도 지자체와 협력해 2차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대비한 중환자 치료 대책을 세우는 등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내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는 중이다.

로켓이 목표물을 찾아 머나먼 우주를 날아가기 위해선 엔진 하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성공적 비행을 위해 다단계 추진 엔진이 시의적절하게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장기화하는 코로나 사태에 맞서 지속해서 싸워나가려면 역시 상황에 맞는 추가 엔진이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이번 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앞뒤 재지 않고 현장으로 달려간 의료인의 헌신과 스스로 고립을 선택해 감염 차단에 나섰던 성숙한 시민 의식이 감염병 확산을 막는 주요 엔진 역할을 했다. 하지만 곧 끝나길 바랐던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고 코로나 사태는 장기전으로 돌입했다. 그사이 지치고 느슨해진 마음가짐은 이후 이태원 클럽 발(發) 집단감염 등으로 나타났다. 초기 방역을 담당했던 엔진이 수명을 다해가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한동안 정부 주도의 ‘덕분에 챌린지’ 캠페인이 유행하며 의료진의 사기를 진작해줬지만, 그마저도 이제 수명을 다한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코로나19 의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이를 대비하고 싸우고 버텨내야 한다. 지금은 새로운 엔진을 장착할 때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코로나와 사투를 벌인 의료진을 응원하기 위해  7월 25일 개최된 ‘땡큐 히어로즈 나잇’ 행사는 모처럼 의료인들이 자긍심을 갖고 다시금 코로나와 싸워나갈 힘을 얻는 계기였다.

이날 행사엔 서울시의사회 회원으로서 대구·경북 지역으로 달려가 직접 의료봉사에 나섰던 의사들, 자신의 진료실 문을 닫고 선별진료소에서 땀 흘렸던 의사들, 지금도 현장에서 코로나 환자를 돌보고 있는 젊은 전공의들이 참석했다. 국민의 격려 덕분에 참석자 모두는 피로해진 심신을 달랬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힐링과 리부팅의 시간이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의료인들에게 국민 건강 보호의 사명과 사회적 역할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였다. 필자도 40년 가까운 의사 생활 가운데 의료인에 대한 감사와 응원의 목소리가 이처럼 컸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의료인으로서 우리가 하는 일이 더없이 중요하고 국민으로부터 존중받고 있다는 인식은 번아웃을 딛고 일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최고의 동력이다.

당분간 끝날 것 같지 않은 코로나19와의 전쟁, 의료인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사명을 다 할 것이다. 그리고 의료인들을 버텨내게 하는 힘은, 오로지 국민의 응원과 사랑이다.

박홍준 서울시의사회 회장·대한의사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