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동훈 텔레그램 노렸다···유심을 '스모킹건'으로 본 정진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병실에 누워있는 정진웅 부장검사 [사진 서울중앙지검 제공]

병실에 누워있는 정진웅 부장검사 [사진 서울중앙지검 제공]

부장검사인 수사팀장이 현직 검사장에게 압수수색 과정에서 물리력을 동원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빚어진 데는 ‘휴대전화 유심(범용 가입자 식별 모듈·USIM) 카드’가 있다. 유심카드를 일종의 ‘스모킹건’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실효성에 대해서는 팀내에서도 반발이 나왔다고 한다. 응급실 침상에 누운 채 찍힌 사진을 언론에 배포했던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검사는 전날인 29일 밤 10시 30분쯤 퇴원 후 이날 출근했다. 그는 이날도 병원 통원 진료를 받는다.

유심이 뭐길래

정 부장검사가 유심카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고, 몸을 던지는 무리수를 둔 것은 유심카드를 ‘통로’ 삼아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까지 접근하는 경우도 드물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압수수색 영장에도 이러한 계획이 구체적으로 담겼다고 한다.

유심카드에 직접 저장돼 있는 것은 가입자 정보와 통화내역 정도지만, 유심카드에 담긴 본인 인증 관련 정보를 바탕으로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등 서버에 우회 접속이 가능한 전례도 있다고 본 것이다.

유심[pixabay]

유심[pixabay]

검찰 안팎에서도 사상 초유의 물리력 동원 상황까지 빚어진 데에는 정 부장검사가 한 검사장의 비밀번호 해제로 유심 카드 내에 담긴 데이터가 훼손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실제로 그는 “검사장이 비밀번호 마지막 자리를 입력하면 압수물 삭제 등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검사장은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누를 때 정 부장검사가 “잠금해제를 페이스(얼굴) 아이디로 열어야지 왜 비밀번호를 입력하느냐”고 고성을 질렀다고 묘사했다.

삽화=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삽화=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수사팀은 지난 3월10일 한 검사장과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카카오 보이스톡 통화내역을 ‘스모킹건’ 중 하나로 본다. 한 검사장과 이 기자의 보이스톡 직후 이 기자가 후배 기자에게 한 말 때문이다.

채널A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 전 기자는 통화가 끝난 뒤 후배 기자에게 전화해 “취재가 어렵다고 하자 한 검사장이 ‘내가 수사팀에 말해 줄 수 있다. 나를 팔아라’라고 했다”고 했다.

그러나 한 현직 검사는 “비밀번호 해제로 압수물을 삭제한다는 정 부장검사의 주장은 잘못된 상상으로 보인다”며 “무리한 수사를 끌고 온 수사팀의 조바심과 압수수색 절차에 대한 무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팀 내에서도 반대했나

이례적으로 부장검사가 압수수색을 직접 지휘하게 된 데에는 유심 압수 계획에 팀 내부에서조차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유심으로 확보할 수 있는 증거의 범위는 대개 통화 내역 등에 불과하다는 판단에서다. 집행은 물론 청구 때부터 이견이 분분했다는 것이다. 압수수색 영장에 동행한 장태형(39기) 검사는 정 부장검사의 드문 ‘우군’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전례에 비춰봐도 극히 드물다는게 검찰 내부의 중론이다. 통상 압수수색에는 평검사나 부부장검사가 참여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택 압수수색 때도 부부장검사가 현장을 지휘했다. 부장검사가 현장에 가는 경우는 한동훈 검사장처럼 피의자가 아니라 제3의 기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인 경우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부장검사 측은 한 검사장에 대한 ‘이견’이 아닌 ‘예우’ 차원에서 본인이 직접 현장에 나가게 됐다는 입장이다. 한 검사장은 사법연수원 2기수 선배이자 검찰 직급 체계상으로도 상사다. 정 부장검사는 지난 6월 한 검사장(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의 휴대전화 압수수색 때도 참여했다.

문제의 순간 영상은?

한동훈 검사장(왼쪽) 정진웅 부장검사 (오른쪽) [연합뉴스]

한동훈 검사장(왼쪽) 정진웅 부장검사 (오른쪽) [연합뉴스]

정 부장검사는 “몸 위를 덮쳐 밀었다” “올라타 팔과 어깨를 움켜쥐고 얼굴을 눌렀다”는 한 검사장의 ‘독직(瀆職) 폭행(검사나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를 폭행하는 것)’ 주장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독직폭행 혐의로 고소장이 접수된 그는 무고 및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맞고소를 예고했다.

그러나 한 검사장과 정 부장검사의 진술이 엇갈리는 물리력 행사의 모습이 담긴 영상은 없다고 한다. 다만 이후 정 부장검사가 사태를 수습하는 모습 등은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일 밤 늦게까지 영상과 관련자 진술 등을 토대로 당시 경위를 확인한 수사팀도 한 검사장의 ‘공무집행방해’ 행위는 없었던 것으로 결론 내렸다. 수사팀은 정 부장검사에 대해 감찰을 맡은 서울고검에 사태의 경위와 배경을 상세히 조사해 조만간 제출할 방침이다.

김수민·나운채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