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수사 절차도, 국민도 무시한 검언유착 수사팀장의 활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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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을 수사하는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검사가 한동훈(법무연수원 연구위원) 검사장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검찰 소속 건물에서 선후배 검사가 벌인 활극은 검언유착 수사와 검찰 내부의 난맥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변호사 통화 하는 한동훈과 검찰 초유 육탄전 #‘수사 중단’ 심의위 권고 묵살, 압수수색 강행

양측 주장을 종합하면, 어제 오전 수사팀은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에 있는 한 검사장 사무실을 찾아가 휴대전화 압수를 시도했다. 한 검사장은 수사팀의 동의를 받고 변호사에게 전화하려 했고, 그 순간 정 부장검사가 한 검사장을 덮쳐 쓰러뜨리고, 팔과 어깨를 움켜쥐고 얼굴을 눌렀다는 것이다. 다만 한 검사장은 일방적인 독직폭행당했다고 주장하고, 수사팀은 증거인멸을 제지하려 했다고 맞서고 있다.

수사팀이 집행하려 한 압수수색영장은 지난 23일 발부받은 것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고 불기소하라고 권고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금까지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면서 수사를 재개한 것은 수사심의위의 존재 자체를 무시한 것이다. 최소한 불복의 이유라도 공식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수사를 지켜보는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닌가. 그야말로 안하무인이다.

수사팀은 취재진에 한 검사장이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풀면 그 안에 있는 자료를 지울 수 있어 제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한 검사장은 수사팀의 동의를 받아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변호인 조력을 받는 것은 법에 보장된 피의자의 권리다. 수사 절차를 지키지 않고 입수한 증거물은 법정에서 효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은 법원도 이 수사를 막지 못할 것이란 자신감의 표현인가.

한 검사장 측은 비밀번호가 풀린 상태에서 휴대전화를 확보하려 했던 것이라고 의심한다. 이미 압수한 다른 휴대전화도 비밀번호를 풀지 못해 포렌식을 하지 못하는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있다. 사실이라면 수사력의 한계를 드러낸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피의자와 수사팀장이라지만 기소도 못한 상태에서 한 검사장은 정 부장검사의 선배이자 상급자다. 그러나 어제의 활극은 한 검사장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적으로 여기는 수사팀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치 조폭 내 세력다툼 같은 모습이다.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증인도 많고 CCTV도 있다고 하니 분명히 시비를 가리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 부장검사는 조만간 있을 검찰 인사에서 검사장 승진 물망에 올라 있다. 독직폭행이 될 수도 있는 일을 덮고 그대로 승진시킨다면 국민 전체를 우롱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