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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무리수가 무리수를 낳는 임대차보호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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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 여당이 임대차보호 3법(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 상한제, 전·월세 신고제)의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주거 약자 보호라는 정책 의도와는 달리 현장에서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벌써 서울을 중심으로 전셋값 폭등과 전세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법 시행 전에 미리 전셋값을 올려 받는 사례와 함께 법 적용을 피해 임차인을 내보내는 집주인이 많아지면서 전세대란 조짐마저 보인다. 두어 달 전보다 전셋값이 수천만~수억원씩 뛰면서 신혼부부나 세입자들의 한숨이 깊어졌다.

소급입법 등 위헌 소지에도 법안 통과 강행 #현장에선 ‘전세 대란’ 조짐에 세입자들 한숨

얼개가 드러난 임대차보호법 정부 안은 전세계약을 ‘2+2년’(1회 연장)으로 하고, 계약 갱신 때 임대료 인상률을 5%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소급입법과 지나친 재산권 침해에 따른 위헌 소지는 여전하다. 정부 안은 계약갱신청구권제를 기존 세입자에게도 적용하도록 했다. 제도 시행 초기 임대료 급등 우려를 줄이겠다는 의도이긴 하지만, 소급입법 논란이 일고 있다. 당정은 2018년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때도 소급 사례가 있어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위헌 소지 여부는 별개 문제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소급입법은 지금까지 위헌 소송이 제기된 적이 없어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이뤄지지 않았을 뿐이다.

소급입법이 되면 법 시행 전에 미리 올린 임대료의 처리를 놓고도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정부 안은 법 시행 전에 집주인이 전세금을 5% 이상 올릴 경우, 법 시행 이후 임차인이 그 차액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전세금을 다른 용도에 써버린 집주인이 선선히 응할 리 없어 각종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 집주인이 거짓 사유로 계약 갱신을 거부할 경우 세입자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안도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거짓 사유’의 기준 등을 놓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만 커질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 사적 계약 관계에 국가가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임대차보호법안의 부작용은 이미 여러 차례 경고됐다. 집값 대책이 실거주 요건을 강화하고 보유세를 올리는 쪽이 되면서 전세 수요가 가뜩이나 급증했다. 이런 시점에 전세 시장에 충격을 주는 법안을 추진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다. 임대 의무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린 1989~1990년 전셋값 폭등 사례를 잊은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여권은 악화한 부동산 민심에 여러 대책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의 시장 원리를 무시하다 보니 온갖 졸속이 난무한다. 무리수를 다른 무리수로 땜질하는 형국이다. 어설픈 시장 개입은 정책 의도와는 달리 세입자의 고통만 키운다. 시장에 충분한 공급이 이뤄질 것이라는 신호를 먼저 보낸 후 정교한 정책을 펴는 것이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