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쇼핑·섹스 탐닉까지… 중독은 '뇌질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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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中毒)이 범람하고 있다. 흡연.음주.마약.도박은 물론 과거에 없었던 주식.사이버.쇼핑.섹스중독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엽기' 라는 단어의 유행이 암시하듯 자극적인 쾌락을 탐닉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중독이란 특정 행위나 대상에 대한 갈망이 지나쳐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현상. 더욱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는 내성(耐性)과 끊을 경우 견디기 힘든 고통이 나타나는 금단(禁斷)증상을 지닌다.

현대의학은 중독을 기호나 습관이 아닌 질환으로 해석한다.

예컨대 흡연은 니코틴중독, 음주는 알코올중독이며 술과 담배가 건강을 해친다는 뜻에서 흡연자와 음주자를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 본다. 중독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뿌리는 하나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는 "중독은 뇌 깊숙이 위치한 쾌락중추와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에서 비롯되는 정신질환" 이라고 강조했다.

감기가 호흡기 질환이듯 중독도 뇌의 질환이란 것. 중독성향은 크게 두가지다.

이유없이 스릴을 즐기거나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아나서는 타입과 우울하고 소심하며 친구가 없어 도무지 세상 재미를 모르고 무미건조하게 사는 타입이다.

둘 다 술이나 담배 등 자극에 한번 맛들이면 헤어나지 못한다. 유전자도 중요하다. 아직 중독유전자가 명확히 규명되진 않았지만 중독은 대물림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국립서울정신병원 정신과 오동열 과장은 "부친이 알콜중독이면 자녀도 알콜중독이 될 확률이 정상인의 4배에 달한다" 고 말했다.

'대박' 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도 중독 만연에 한 몫 한다. 현대증권 투자클리닉센터 김지민 원장은 "투자자들 상당수가 하루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시황에만 관심을 쏟는 주식중독증 환자" 라고 말했다.

흡연과 음주 등 일상화한 가벼운 중독이라면 의지보다 지혜를 동원하는 것이 좋다.

한번 박힌 쐐기를 꺼내려고 바둥거리다 보면 상처만 나고 더욱 깊숙이 박힌다는 것.

이땐 다른 쐐기를 새로 박아 이미 박힌 쐐기를 빼내는 방식이 좋다. 흡연이나 과도한 음주로 고민한다면 무조건 끊으려고 애쓰기보다 운동이나 취미활동 등 다른 유익한 습관을 가져보는 것이 권장된다는 것.

심한 경우라면 약물 등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치료법은 날트렉손 요법.

쾌락중추에 작용해 자극에 둔감하게 만들어주는 날트렉손은 원래 마약중독과 알콜중독 치료에 널리 쓰여왔으나 최근 도박 등 다른 중독현상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교수는 "미국 미네소타대 의대팀과 공동으로 일반적인 심리치료로 듣지 않는 중증 도박중독자에게 날트렉손을 투여한 결과 75%에서 효과가 나타났다" 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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