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야구소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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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주수인(이주영)은 야구선수다. 한국 최초의 여자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지만, 수인을 눈여겨보는 구단은 없다. 입단 테스트인 트라이아웃을 통해 문을 두드려 보려 하지만 이 기회마저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엄마는 취직을 권하고, 코치도 가망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수인의 의지를 꺾지 못한다.

시속 130㎞ 정도의 직구 스피드로는 프로가 될 수 없다. 그러기에 수인은 너클볼을 연습한다. 손가락으로 튕기듯 던지는 이 구종은 거의 회전 없이 날아가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예측할 수 없이 변한다. 구속은 느리지만 공의 회전이 좋았던 수인은, 오히려 자신의 장점을 끌어내려 공의 회전이 제로에 가까운 너클볼을 던지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극단적 선택이다. 손가락이 짧기에 손톱으로 공을 찍어 누르듯 던져야 한다. 핸디캡투성이인 수인에겐, 그래도 이것만이 살길이다.

0724 그영화이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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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클볼은 트라이아웃에서 빛을 발한다. 연봉 10억 원이 넘는 프로 선수를 상대로 공을 던지게 된 수인. 이때 그는 글러브 안에서 너클볼 그립을 잡는다. 그 손가락엔, 힘든 상황에서 꿈꾸는 자의 절박함이 있다. 누구라도 그런 것이 아닐까?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이루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나만의 너클볼 하나쯤은 품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누구나 던지는 직구 말고, 나만의 궤적을 지닌 공을 던져라. 영화 ‘야구소녀’의 교훈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