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판을 이기기 어렵다는 점을 누누이 설명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피해자 유족들)는 부모들의 한(恨)을 풀어주려 합니다."
23일 오후 2시 광주지법 203호 법정.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의 변호인이 재판부에 양해를 구한 뒤 읽어내려간 편지 내용이다.
23일 광주지법서 강제징용 손해배상 재판 #유족들 "재판정에서 읽어달라" 편지 전해 #"강제징용 후유증. 가난…명예회복 바라" #미쓰비시, 15개월만에 "청구권 소멸" 주장
이날 피해자 유족들은 광주지법 민사14부(부장 이기리) 심리로 열린 공판을 앞두고 “재판정에서 꼭 읽어달라”며 김정희 변호사의 손에 편지를 쥐여줬다. 그는 “원고들은 모두 강제동원 당한 피해자들의 유족”이라고 말문을 연 뒤 편지를 낭독했다.
피해자들은 떠나고 유족만 남아
김 변호사는 "부모님들은 강제징용 후유증 탓에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했고, 자식들은 경제적으로 무능한 부모 아래서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며 "부모들은 자식들 앞에서 강제징용의 기억을 꺼내지 않았지만, 이따금 노역 중 경험한 학대와 차별의 트라우마를 말했다"고 했다. 부모들이 당한 모진 세월에 대한 한을 풀어주기 위해 소송에 참여했다는 뜻을 편지로나마 대신한 것이다.
이날 재판은 지난해 4월 29일 광주·전남 강제징용 피해자 12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위자료 청구 민사소송 공판이었다. 미쓰비시중공업 측은 지난해 11월과 12월, 올해 4월과 5월 등 4차례 열린 재판에 모두 출석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생존 피해자로 소송에 참여했던 고(故) 이영숙(당시 89세) 할머니가 지난해 7월 세상을 떴다. 미쓰비시중공업에 소송 서류를 전달하려 했지만, 일본 정부의 비협조로 제대로 전달됐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었다.
"강제징용 후유증…가난 대물림"
원고 중 유일한 생존자마저 사망하고 재판은 15개월 동안 하염없이 지연되는 상황. 재판부가 지난 5월 재판에서 "피고인 미쓰비시중공업이 재판에 응하지 않더라도 원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하자 미쓰비시중공업이 재판부에 소송대리인 위임장을 내면서 사실상 첫 기일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는 강제징용 피해자 고(故) 김금천씨(사망 당시 89세)의 손자가 참석했다. 김금천씨는 1943년 전남 나주에서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끌려가 2년 동안 강제징용 피해를 당했다.
손자는 "할아버지는 미쓰비시중공업에 징용당해 귀가 먹었고 한 손가락도 없었다"며 "후유증으로 직업도 갖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어려운 재판이란 것도 알지만, 피해보상이 문제가 아니라 명예를 회복 받길 원한다"고 했다.
미쓰비시중공업 "청구권 소멸"
이날 재판에 출석한 미쓰비시중공업 측 변호인은 “원고 측에 손해배상 청구권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이미 소멸됐다는 주장이다.
미쓰비시중공업 측은 또 “재판관할이 없고 불법행위에 대한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원고 측은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에게 최종 배상 판결을 내린 2018년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했기에 소멸시효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김정희 변호사는 "앞선 재판은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재판을 이끌어 나갈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모두 돌아가셔서 한계가 있다"며 "강제징용 당시 후생연금(산재보험) 기록과 피징용자 명부를 토대로 피해 사실을 입증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