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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엑소더스' 돕는 영국 "영어만 되면 무제한 이민 받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6월 1일 홍콩 시위대 중 한 명이 영국해외시민(BNO) 여권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6월 1일 홍콩 시위대 중 한 명이 영국해외시민(BNO) 여권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정부가 내년부터 홍콩인들의 이민을 대규모로 받아들이겠다고 공표했다. 홍콩 보안법 제정에 현지를 떠나려는 주민들의 '엑소더스'를 돕겠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해외시민' 대상 비자 발급 #5년 거주 후 시민권 취득 기회 줘 #자격자 290만명에 가족도 포함

BBC 방송 등에 따르면 프리티 파텔 영국 내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2021년 1월부터 영국해외시민(British National Overseas·BNO)을 대상으로 비자 신청을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파텔 장관은 “(신청자에게) 기술 시험이나 최저 소득 요건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규모 제한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리티 파텔 영국 내무장관이 7월 13일 영국 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22일 성명을 내고 내년 1월부터 홍콩인의 영국 이주를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프리티 파텔 영국 내무장관이 7월 13일 영국 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22일 성명을 내고 내년 1월부터 홍콩인의 영국 이주를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BNO 여권은 영국이 1997년 7월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기 전까지 홍콩인들에게 발급했던 여권으로, 소지자는 6개월간 비자 없이 영국에 체류할 수 있다. 이번 영국의 발표는 기존 6개월 체류 기간의 준시민권을 사실상 영국 시민권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관련 내용을 종합하면, BNO 여권을 소지하고 있거나 과거에 소지했던 홍콩인은 내년부터 비자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비자를 신청하면 내년부터 5년간 영국에서 거주하며 일할 수 있다. 5년 뒤에는 정착 지위를 부여하고 1년 후 시민권 신청을 허용한다. 다만 위중한 범죄 이력이 없어야 하고 정착 지위를 받으려면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조치는 BNO 여권 소지자뿐만 아니라 여권이 없는 배우자와 미성년자 자녀까지 적용할 수 있다.

현재 BNO 여권을 갖고 있는 홍콩인은 290만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배우자나 자녀까지 고려하면 영국으로 이주할 수 있는 홍콩인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홍콩 인구가 750만 명인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홍콩 엑소더스(대탈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영국 정부는 이번 발표가 “중국이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1984년 중국 영국 공동선언을 위반하고 일국양제의 틀을 훼손했기 때문”에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홍콩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영국이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콩 시민들이 반환 23주년 기념일인 이달 7월 1일 보안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홍콩 시민들이 반환 23주년 기념일인 이달 7월 1일 보안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일부터 시행된 홍콩 국가보안법은 처벌 대상을 크게 4가지로 명시하고 있다. 국가 분열 행위, 국가·정권 전복 행위, 테러 행위, 해외세력과 결탁해 국가 안전을 해치는 행위 등이다. 영국은 이 홍콩 보안법이 1984년 체결한 ‘영국-중국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홍콩반환협정은 홍콩이 1997년 중국 반환 이후에도 향후 50년까지 고도의 자치를 누린다는 ‘일국양제’를 전제로 만들어졌다.

중국은 영국 정부의 이번 조치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즉각 비판하고 나섰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런던 주재 중국대사관은 23일 성명을 내고 “이 조치는 심각한 내정 간섭이며, 국제법과 국제 관계의 기본 규범을 중대하게 위반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은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영국은 즉각 잘못을 바로잡으라”고 요구했다.

◇미-영 대중 정책 공조

영국은 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중국을 향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중국 기업인 화웨이 퇴출을 공식화했다. 영국 이동통신사들이 더는 화웨이의 5세대(5G) 장비를 사들일 수 없고, 기존 장비도 2027년까지 모두 퇴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20일엔 홍콩과의 범죄인 인도조약을 즉시 무기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영국 내 범죄인 송환이 홍콩 보안법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21일 영국 런던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오른쪽)와 회동했다. [AFP=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21일 영국 런던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오른쪽)와 회동했다. [AFP=연합뉴스]

영국은 현재 미국과 함께 가장 적극적으로 반중 전선을 형성하며 대중 정책 공조에 나서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1일 영국 런던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도미닉라브 영국 외무장관과 연이어 회동을 가졌다. 존슨 총리와 폼페이오 장관은 대중 정책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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